지난 17일 서울 중구 미 대사관저 앞에서 이수진 서울청 61기동대장이 무전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씨는 최근 경찰 역사상 처음으로 남성 기동대원을 지휘하는 여성 대장이 됐다. /이태경 기자

“‘왜 여경(女警)이 경비과를 오려고 하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왔습니다. 여자도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면서 버틴 게 11년입니다. 남성 기동대원을 지휘하는 첫 여성 기동대장으로서 당당하게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최근 단행된 경찰청 인사에서 서울청 기동본부 61기동대장으로 발령 난 이수진(43) 대장은 지난 17일 본지와 만나 힘차게 포부를 밝혔다. 61기동대는 남성 기동대원이 74명, 여성 기동대원이 6명인 혼성 기동대다. 여경들로만 구성된 여성기동대가 아닌 남성 기동대원까지 지휘하는 자리에 여성 대장이 오른 건 경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기동대는 집회·시위 현장에 배치되는 경비·경찰 부대로, 기동대장은 현장에서 대원들을 지휘하고 직접 대원들 훈련도 실시한다.

이날 서울 중구 정동 미 대사관저 앞 경찰 버스에서 수시로 울려대는 무전에 일일이 대응하며 상황을 지휘하던 이 대장은 “최근 건설노조, 진보단체 등이 여는 각종 집회가 많은 데다 핼러윈 참사 이후 기동대를 찾는 곳이 늘어 책임감이 크다”면서도 “현장에서 일할 때 가슴이 뛴다”고 했다.

그간 경비 업무는 경찰에서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전국 경비 경찰 1만5800여 명 중 여성 경찰관은 600여 명(3.8%)에 그친다. 여성 비율이 낮은 정보국(9%), 교통국(10%), 형사국(11%)과 비교해도 현저히 낮다. 이 대장은 “최근 형사나 교통경찰은 여경 비율이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경비는 힘이 필요한 일이 많다는 생각 때문에 아직도 여성 경찰의 비율이 낮은 것”이라며 “하지만 현장에서 힘으로 막는 일이 생각보다 적고, 상황 조율 등 여경이 노력하면 더 잘할 수 있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2003년 순경으로 입직한 뒤 2008년부터 10여 년째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이 대장에게 경비 경찰의 길은 도전이었다. 입직 2년 차부터 일선서 경비과에 지원했지만 “왜 여자가 경비를 하려고 하느냐” “여성을 뽑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잇따라 반려됐다. 이 대장은 “‘힘이 세서 폴리스라인도 번쩍 들 수 있고 목소리도 무지 커서 무전도 잘 친다’고 설득한 끝에 네 번 만에 겨우 경비과에 들어갔다”며 웃었다.

경비과에 들어가서도 남성 동료보다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대장은 “처음 맡은 일이 마라톤 행사였는데 행사 한 달 전부터 10㎞에 달하는 코스를 매일 걸어 다니며 돌발 상황이 생길 곳은 없는지 살펴보다 얼굴이 다 타기도 했다”고 했다. 한 대학가 원룸촌에 폭발물이 설치돼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날에는 경찰특공대가 오기 전 직접 현장에 들어가 탐색한 적도 있다. 그는 “더 노력하고 잘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무모할 때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첫 여성 기동대장이 됐지만 여전히 편견과 싸우는 중이라고 했다. 이 대장은 “여자 기동대장이 왔다고 하니 ‘버스도 핑크색으로 바꿔야 되겠다’라며 조롱하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 여자가 기동대장을 하느냐’는 얘기도 많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경찰로 처음 입직했던 파출소에 여경은 나 하나였고 청소나 커피 타는 일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지구대나 파출소의 여경들이 남성과 똑같이 근무하지 않느냐”며 “경비 경찰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차원에서도 남성과 여성 기동대원 사이에 구분을 없애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2000년부터 여성기동대를 따로 운영해온 경찰은 작년 말부터 일부 시도청에서 남경과 여경이 함께 근무하는 혼성 기동대를 운영하고 있다. 실제 지난 18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촛불집회 현장에 이 대장이 이끄는 61기동대가 배치됐다. 당시 한 여성 집회 참가자가 도로로 나와 교통이 잠시 통제됐는데 현장에 있던 여성 기동대원이 바로 투입돼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이 대장은 “기존처럼 기동대가 별도로 운영됐다면 여성 기동대가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혼성 기동대가 현장에서 더 많은 활약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경이라고 해서 특혜는 없다”며 “근무도 훈련도 완전히 공평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