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한 주민이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추위를 피하고 있다. 전국에 한파특보가 발효되면서 월동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 계층들이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다. /김지호 기자

서울 기온이 최저 영하 9도, 체감온도는 영하 15도까지 떨어진 22일 오전, 강남구 구룡마을에 사는 이모(66)씨는 가스버너로 끓인 물을 싱크대에 붓고 있었다. 싱크대에 연결된 하수도관이 얼어 며칠째 물이 제대로 내려가지 않아서다. 바깥 냉기가 집 안으로 스며든 탓이다.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구룡마을의 상당수 집은 수돗물 공급 호스가 지붕 쪽에 설치돼 있어 이런 날 얼어붙기 일쑤다. 이씨는 “일주일 넘게 한파가 이어지면서 물이 안 나와 애를 먹고 있다”며 “씻으려고 20분쯤 차를 타고 목욕탕에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화징실도 얼어붙어 물이 내려가지 않는 곳도 많다.

찔끔찔끔 나오는 물을 모아 데워서 쓰려 해도 비용이 만만찮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2~3개월에 한 번 20㎏짜리 LPG 가스통을 주문해서 사용하는데, 작년 겨울엔 한 통에 3만원쯤이던 것이 최근 5만8000원까지 올랐다.

이 마을에서 30년 넘게 홀로 살아온 김영자(81) 할머니 집은 방문 경첩 부분이 아예 얼어붙었다. 문이 약 30㎝밖에 열리지 않아 그 틈새로 방을 드나든다고 한다. 이날 찾아간 그의 방 안도 냉기가 가득했다. 김씨는 보자기를 얼굴에 두른 채 겉옷을 수 겹 껴입고 지낸다고 했다. 김 “너무 추워서 엊그제부터 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인근 홍모(80)씨도 방에 달린 철문이 며칠 전 내린 눈과 함께 꽁꽁 얼어붙어 방 안에 5시간 동안 갇혀 있었다고 했다.

최근 일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전국적인 한파와 폭설이 쪽방촌이나 고시원 등에 사는 주거 약자나 노숙자 등 취약 계층의 생활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날 본지가 서울에서 취약 계층이 많이 거주하는 곳들을 둘러봤더니, “실내에 있어도 바깥에 있는 것 같다”며 추위에 근근이 버티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김모(75)씨는 이날 오후 5㎡쯤 되는 방 한 가운데 패딩 점퍼를 입고, 목도리까지 두른 채 앉아 있었다. 양쪽 주머니엔 핫팩을 넣었다고 했다. 연탄을 땠다고 했지만, 방바닥은 싸늘했다. 이곳 주민 권모(69)씨는 “화장실 가는 것이 가장 고역”이라고 했다. 쪽방촌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어 근처 공중화장실까지 가야 하는데, 폭설과 한파가 이어지며 길이 얼어붙어 넘어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22일 서울 용산역 고가도로 밑 텐트촌에 사는 한 노숙인이 부탄가스로 물을 데워가며 추위를 피하고 있다./장련성 기자
12월 22일 서울 용산역 고가도로 밑 한 노숙인 텐트./장련성 기자

서울 용산역 근처 고가 밑 ‘텐트촌’의 겨울도 냉랭했다. 이곳 사람들은 10여 년 전부터 갈 곳 없는 이들이 하나둘 모여 지금 20여 개의 텐트가 설치됐다고 전했다. 각 텐트는 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과 은박 돗자리 등으로 겹겹이 싸여 있었다. 주변에는 빈 부탄가스 통이 굴러다녔다. 이곳에 산다는 A씨는 “가스버너로 라면도 끓여 먹고 교회 등에서 나눠주는 도시락을 받아 끼니를 때운다”면서 “빨래하거나 용변을 보러 용산역에 간다”고 했다. 텐트 안에서는 가스버너를 켜서 공기를 잠시 데운 뒤, 핫팩을 끌어안고 잔다고 했다. 1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았다는 B씨는 “물이 얼어서 부탄가스로 녹여 써야 하는데 부탄가스도 추위로 얼었다”고 했다.

지자체나 곳곳의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이 한파를 근근이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 나서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은 데다 비용도 만만치가 않아 고전하고 있다. 주 1~2회 텐트촌을 순찰한다는 용산구청 측도 “순찰 때마다 장갑이나 양말, 핫팩 같은 방한용품을 지급하고, 한파를 피할 수 있는 쉼터도 안내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하긴 어렵다”며 “가스버너 등으로 사고가 날까봐 최근엔 소화기구함도 추가했다”고 했다. 쪽방촌을 관리하는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상담소를 통해 쪽방촌에 필요한 연탄이나 기름, 한파 구호물품 등을 지원하는 등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다. 구룡마을 한파 대비를 위해 두 달간 난방기와 물탱크 등을 점검했다는 강남구청은 “구룡마을 개발 전까지 임대료 40% 감면 등 임시이주를 지원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통해 주민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관심과 지원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했다.

불황으로 기부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어려운 점이다. 연탄을 기부 받아 취약계층 등에 공급하는 연탄은행 허기복 대표는 “올겨울은 추위가 더 빨리 온 데다, 폭설까지 겹쳐서 더 힘든 국면”이라면서 “평년보다 더 많은 기부가 필요한 상황인데 예전만큼 도와주겠다는 분들이 많이 나타나지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한파는 연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23일 전국적으로 기온이 큰 폭으로 더 떨어진다. 중부지방의 아침 기온이 영하 15도, 남부지방이 영하 10도 내외까지 내려간다. 바람도 강하게 불면서 체감온도는 이보다 더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충남·전라권과 제주도에는 23일 시간당 3~5㎝의 많은 눈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