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이든 저녁이든 연말 장사가 너무 안 되네요....”

21일 저녁 7시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고깃집에는 테이블 16개 중 14개가 빈 채였다. 사장 정모(75)씨는 이날 점심때도 손님을 4팀밖에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예년 같으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명동을 찾는 사람들과 주변 회사 연말 회식으로 가장 바빠야 할 대목인데 손님이 없다”면서 “그나마 외국인은 조금 늘었는데, 한국인 손님은 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이날 명동은 코로나 사태가 한창일 때와 비교하면 사람이 적지 않은 편이었지만, 현장의 적지 않은 상인들은 “코로나 한창때보단 낫지만 매출이 오르지 않는 건 마찬가지”라며 성탄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고 했다. 코로나 전만 해도 곳곳에서 보였던 크리스마스 트리나 각종 장식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사회적 거리 두기 없는 첫 연말이 너무 휑하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가 재확산하기 시작한 데다 독감·장염 유행까지 겹쳐, 직장인들 사이에선 자가 격리를 하거나 모임을 취소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한파가 일주일 넘게 이어지자, 어두워지면 옷깃을 여민 채 일찍 귀가하는 시민들도 많다. 겉보기에 북적거리는 번화가에서도 막상 자영업자들은 “사람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며 경기가 얼어붙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거기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여파로 화려한 대형 행사도 곳곳에서 취소·축소되고 있다. 명동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는 24일 대표 명물 중 하나인 362개 거리 노점이 전체 휴업을 한다. 연말인 31일에도 단축 운영하기로 했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중구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등을 고려해서 시민 안전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는 매년 광주시청 앞 잔디광장에 설치되는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올해는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트리 설치를 시작한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역시 이태원 참사 여파로 인파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결정이다. 연말 해넘이, 해돋이 행사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경북 영덕군에서는 이달 31일 열기로 했던 타종 행사와 이튿날 열려던 해맞이 행사를 취소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돋이와 해넘이를 함께 볼 수 있는 충남 당진시 왜목마을에서도 올해 해맞이 축제를 열지 않기로 했다.

이런 상황 속 코로나도 재확산 조짐이 보인다. 21일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8만8172명으로 98일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주변에 확진자가 다시 늘고 있는 걸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다. 격리자가 생기다보니 각종 모임이 줄취소되는 일도 생기고 있다. 거기다 장염, 독감 등도 유행하고 있어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들의 경우 사람들이 여럿 모이는 모임에 나가길 꺼린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공기업에 다니는 신모(30)씨는 “최근 2주 동안만 팀원 27명 가운데 6명이 확진돼 격리됐다”며 “3년 만에 연말 회식을 잡았다가 올해도 취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기업 분위기도 연말 회식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서울 시내 한 대형 회계법인에 다니는 이모(26)씨도 동기 20명과 1박2일 모임을 준비했다가 취소했다. 원래 회사에서 이런 모임을 장려하지만 올해는 예산 지원을 해주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회사 분위기가 가급적 단체 모임을 자제하라는 식이라, 자율적으로 2~3명씩만 모이기로 정했다”고 했다.

종무식을 일찍 하고 직원들에게 휴가를 쓰라고 권장하는 기업에서는 연말 모임 대신 해외로 장기 휴가를 떠나는 직장인들이 잇따른다. 삼성전자에 다니는 윤모(42)씨도 이달 25일부터 열흘간 미국 여행을 떠난다. 윤씨는 “올해는 종무식을 따로 안 한다고 하는 데다 코로나 거치면서 유연 근무제에, 재택근무에 각자 스케줄대로 일하는 분위기가 굳어져서 모임하자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시민들이 움츠러드는 분위기 탓에 기부도 예년만 못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21일 사랑의열매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내달 31일까지 이어지는 연말 기부에서 이날 기준 기부액이 목표액(4040억원)의 약 58%에 그쳤다. 사랑의열매 측은 “작년 이맘때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