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8시쯤 술집 수십 곳이 몰려 있는 서울 종로구 종각역 뒤편. 주점을 운영하는 박모(48)씨는 한산한 가게 안에서 손님 대신 식탁 의자에 앉아 출입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씨는 “코로나 때도 이 시간이면 택시 5~6대가 손님 모신다고 근처에 줄을 섰는데, 몇 주 전부터 골목 전체가 쥐 죽은 듯 조용하다”면서 “도저히 연말 같지가 않다”고 했다. 주점이 밀집한 130m 길이의 골목 양쪽으로 위치한 15개 술집 중에서 테이블 절반 이상 손님이 차 있는 가게는 3곳도 되지 않았다.

비슷한 시각 종로3가역 인근 포장마차촌도 비슷했다.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손님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6년간 포장마차를 했다는 최모(67)씨는 “특히 추운 겨울에 국물 안주를 찾으며 들어오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새벽 2시까지 일해도 다섯 팀 받을까 말까다”라고 했다.

각종 모임이 크게 늘어나곤 하는 연말이 다가오고 있지만,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오히려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다”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이태원 핼러윈 참사 여파로 낮보다 야간 매출 감소세가 뚜렷하다고 한다. 가뜩이나 불황이 본격화하고 있고 금리·물가가 함께 오르면서 상인들의 부담이 커졌는데, 연말 대목을 기다린 것이 무색하게 주요 상권에서 밤 매출이 꺾이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7일 소상공인 경영 관리 서비스 스타트업 한국신용데이터가 서울시 소재 외식업 8만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신용카드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태원 참사가 있었던 10월 4주(10월 24~30일)와 비교해 서울 전역의 야간 매출은 11월 1~3주에 주당 5~7%씩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주간 매출 감소 폭은 1~3% 수준이었다. 용산구 이태원동의 경우 참사 직후인 11월 1주에는 매출이 84% 줄었고, 11월 3주에도 감소 폭이 72%나 됐다.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대표 상권인 홍대거리가 있는 마포구 서교동 상권도 11월 1~3주 주당 7~12% 야간 매출이 줄었다. 강남역 일대 서초구 서초동도 같은 시기 감소 폭이 1~9%였다. 한국신용데이터 관계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이익이 남는데, 원래는 대목이어야 할 시기에 매출이 쪼그라들면서 자영업자들이 체감하는 피해가 더 클 것”이라고 했다.

실제 현장에선 “참사 여파로 각종 모임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약 400㎡(120평) 규모 대형 해산물 음식점을 운영하는 장모(65)씨는 “요즘은 인근 법원, 경찰서나 대기업에서 회식 단체 손님이 찾아오는 대목인데도, 근 한 달 동안 단체 손님 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장씨는 “이태원 참사 직전에는 하루 매출이 200만원도 넘었는데, 최대 대목인 12월이 됐는데도 매출이 100만~150만원에 그친다. 직원 5명 인건비만 하루 60만원인데, 코로나 기간 때 빌린 돈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했다.

“불황 속 물가까지 올라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것 같다”면서 소비 침체를 느끼는 자영업자도 여럿 있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설렁탕·수육집을 운영하는 신유남(61)씨는 “점심 장사는 인근 직장인들 덕분에 그나마 유지가 되지만, 저녁 회식이 확 줄었다”면서 “손님들 지갑이 얇아져 설렁탕은 많이 먹어도 6만원짜리 수육을 시키는 손님 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월드컵 경기가 계속 밤 늦게 치러져 ‘월드컵 특수’도 제대로 못 느꼈다는 상인도 많았다. 5일 오후 찾은 서울 강남구 먹자골목의 한 대형 실내포차 입구엔 ‘축구 경기 틉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사장 송영대(70)씨는 최근 가게에서 축구를 본 손님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이전엔 하루 매출이 300만원이 넘는 날도 많았는데, 요즘은 매출이 평일 100만원대, 주말엔 170만원대로 떨어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