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에서 임명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 인권위원(차관급)이 28일 공개 석상에서 인권위 내부에서 소수 의견이 묵살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합의제 기관이면서 소수파 인권 보호가 존재 의미인 인권위에서 이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했다. 현재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을 포함한 인권위원 11명 중 9명은 문재인 정부 당시에 임명된 이들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뉴스1

인권위 상임위원을 맡고 있는 이충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15차 전원위원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상임위원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고, 여당 몫 상임위원으로 지난 9월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 선출됐다.

이 상임위원이 소수 의견이 묵살됐다고 주장하는 지점은 인권위가 최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던 ‘에이즈예방법’ 관련 위헌 의견과 이에 대한 보도자료다. 헌법재판소는 서울서부지법의 제청으로 에이즈예방법을 두고 위헌 여부를 따지기 위해 지난 10일 공개 변론을 열었다. 현행 에이즈예방법(19조)는 감염인은 혈액 또는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어길시(같은법 25조 2항) 감염자를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변론을 앞두고 인권위는 지난달 24일 전원위원회를 열었다.

당시 인권위원 다수는 “‘체액을 통한 전파매개행위’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사적인 행위를 징역형으로 처벌함으로써 비례의 원칙에도 위배한만큼 위헌”이라고 봤다. 그러나 이 상임위원과 한석훈 비상임위원은 “법에 명시된 ‘체액을 통한 전파매개행위’는 콘돔을 쓰지 않은 성행위 등 에이즈를 전파할 수 있는 안전하지 않은 성접촉만을 의미하므로(명백성이 확보) 위헌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후 지난 7일 에이즈예방법의 위헌에 관한 결정문을 헌재에 제출했고, 지난 9일 언론사들에 보도자료를 내고 헌법재판소에 의견 제출 사실을 공개했는데, 문제는 해당 보도자료에 이 상임위원과 한 비상임위원의 소수 의견은 배제됐다는 점이다. 실제 인권위 보도자료에는 다수 의견인 에이즈예방법 관련 위헌 의견 및 근거만 적혀있다.

이 상임위원은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인권위의 권위를 위해 소수 의견은 가급적 안 쓰는 게 좋고 쓰더라도 짧게 쓰기를 바란다’고 했다”며 “이런 발언은 다수 의견만 의미 있고 소수 의견은 걸림돌이니 외부에 드러내지 말자는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이고 소수파 위원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전임 위원장과 전임 위원장 때는 보도자료에서 소수의견을 언급한 사례가 있는데 송 위원장 취임 이후로는 보도자료에서 소수의견을 언급한 사례가 단 한 번도 없다”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보도자료에서 소수의견을 반드시 언급하며 금융통화위원회도 보도자료에서 소수의견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소수파 보호가 본질적 존재의미인 인권위에서는보도자료에서 더욱 소수의견을 언급해야 한다”고 했다.

이 상임위원은 이날 전원위원회에서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현 의견표명의 건’ 등 안건 의결 이전에 의사 진행 발언을 신청해 이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이 상임위원이 발언을 시작하자 공개 회의는 중단됐고, 약 30여분간 이 상임위원의 발언 등을 놓고 내부에서 회의가 이어졌다.

이 상임위원은 이날 지난달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일부 인권위원들이 자신에 대해 근거없는 인신 공격을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상임위원은 “에이즈 환자에게 약품을 지원하지 말자고 하지 않았는데도 일부 인권위원들이 내가 그렇게 말한 것처럼 왜곡해 인권 감수성이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며 “위원장님은 반복적인 발언에 아무 제지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상임위원은 “에이즈 환자는 경멸과 따돌림 대상이 아니라 약품을 지원하고 함께 품고가야 할 형제 자매라고 생각한다”며 “인권 감수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상임위원은 “헌재가 에이즈예방법을 위헌으로 결정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며 ‘확신이 틀릴 경우에는 차관급인 상임위원직을 사퇴하겠다. 헌재가 에이즈예방법을 합헌 결정할 경우에는인권위의 소수파를 억압한 인권위의 다수파 중 한 분이라도 사퇴하겠냐’는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인권위 측은 “보도자료를 배포할 때 소수 의견이 담긴 결정문도 함께 언론에 배포하고 홈페이지에 게시한다”라며 “이 상임위원이 제기한 다른 의견들에 대해서는 내부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 4명과 비상임위원 7명으로 구성된다. 국회 선출과 대통령 지명이 각각 4명, 대법원장 지명이 3명이다. 11명 중 이충상 상임위원과 김종민 비상임위원을 제외한 9명은 문재인 정부 시기에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