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명이 숨진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계기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대규모 행사나 축제 때 시민들이 따라야 할 안전 수칙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재발되지 않기 위해 군중(群衆)이 특정 공간에 밀집할 경우 ‘밀집도’를 측정해 위험도를 평가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을 분산 배치하는 ‘인파 관리’(crowd management)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부근 도로에 시민들이 몰려 있다. 이날 핼러윈 행사 중 인파가 넘어지면서 다수 사상자가 발생했다./연합뉴스

핼러윈 참사 전에는 한국 사회에서 대규모 행사 때 인파가 몰려 사람들이 압사할 수도 있다는 우려 자체가 많지 않았다. 작년 3월 행정안전부는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내놨지만 여기에는 “적정 인원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하라”고만 돼 있다. 어느 정도가 적정 인원인지 기준도 없이, 무단횡단이나 교통 혼잡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06년 소방방재청이 ‘공연·행사장 안전 매뉴얼’도 내놨지만, 두 매뉴얼 모두 이번 참사 현장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안전관리를 할 주최 측이 따로 없는 행사였고, 현행법상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설 법적인 근거도 명확하지 않아서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군중 밀집도에 관한 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정 행사에 참여하는 최대 인원을 제한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서퍽대 연구진은 1㎡당 6명이 모이면 사람들이 몸을 가누기 어렵게 되고 한꺼번에 넘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고 봤다. 이번 참사 때는 300여 명이 18.24㎡(약 5.5평) 공간에 겹겹이 쓰러져 대규모 사상자가 났다. 당시 밀집도는 1㎡당 16명이 넘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17개 시도 분향소에 추모 발길 이어져 - 31일 서울광장에 차려진‘이태원 핼러윈 참사’피해자 합동분향소에서 아기를 안은 한 여성이 추도 후 눈물을 훔치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10시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열었다. 경기, 대구, 강원 등 전국 17개 시도에도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로이터 뉴스1

전문가들은 또 통제선을 설치해 사람들이 한쪽 방향으로만 움직이도록 동선(動線)을 잘 배분하면 사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진다고도 했다. 이런 대책을 미리 세울 수 있도록, 주최 측이 불분명한 행사의 경우 지자체나 경찰이 안전관리를 맡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은 “‘군중 관리’를 해야 안전사고가 덜 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국내 안전관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없었다”며 “앞으로는 전 사회적으로 군중 관리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