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던 탈북민 김모(49)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당시 그는 백골에 가까운 상태였고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 아파트 임차료를 낸 것은 지난 2020년 11월이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사망 후 1~2년 방치되었을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지난 19일 죽은채 발견된 탈북민 김모씨가 살던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 현관문에 고지서가 다닥다닥 붙어있다./뉴시스

지난 2019년에도 서울 관악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민 모자(母子)가 숨진 채 발견된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탈북민 위기 가구 발굴·지원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비슷한 사건이 또 벌어졌다.

본지가 25일 이 아파트를 찾아가 보니 김씨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징후가 뚜렷하게 보였다. 문 앞에 “법원으로부터 등기 우편이 왔는데 부재중이어서 다시 오겠다”는 쪽지 6장이 줄지어 붙어 있었다. 그중 4장은 쪽지가 붙은 지 오래돼 글씨가 지워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임대아파트 관리를 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나 보건복지부, 통일부, 양천구 등이 형식적인 방문과 조사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망한 김씨는 지난 2002년 탈북해 한국 땅을 밟은 뒤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탈북민 지원 기관인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에서 탈북민 전문 상담사로 일했다. 하지만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2020년 12월부터 그가 살던 임대아파트 임차료가 밀리기 시작했는데, SH는 임차료가 1년 넘게 밀리자 올해 1월 김씨를 상대로 명도 소송을 내고 지난 7월 승소했다. 이를 근거로 지난 19일 법원 집행관과 함께 이 아파트 문을 따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SH 관계자는 “그전에는 집에 무단으로 들어갈 권한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작년 5월 임차료 연체 내용을 전해들은 복지부는 그를 ‘위기 관리 대상 가구’로 지정했다. 그리고 이를 양천구로 넘겼다. 복지부 관계자는 “개별 가구에 대한 대응은 지자체가 한다”고 했다. 복지부 연락을 받은 양천구 담당자는 작년 6월 첫 방문 이후 최근까지 총 5차례 김씨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기척이 없어 그냥 돌아왔다. 우편으로 “복지 지원을 신청하라”는 내용의 서면을 보냈다고 한다. 양천구 관계자는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 등이 아닌 데다 주민들로부터 고독사 정황이 있다는 민원이 들어온 바도 없었다”면서 “단순히 연락이 안 되는 것만으로 경찰을 불러 협조를 요청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탈북자동지회 서재평 사무국장은 “연락이 두절돼 국민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인데, 정부 관계자들이 단순히 문 두들겨보고 답 없으면 돌아가는 그런 형식적 조치만 있었던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탈북민은 국내에 별다른 연고가 없는 경우가 많은 만큼 정부나 경찰, 지자체 등이 신변을 잘 살펴주는 시스템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했다. 통일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이날 “전반적으로 탈북민 위기 관리 시스템을 재점검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별도로 장기간 연락이 두절되는 등 시민의 안전이 우려될 때 경찰 등 관련 기관이 직접 안전을 확인할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승재현 연구위원은 “누군가의 주거지에 들어가는 것이 현행법상 자칫 주거침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 등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많은데, 위험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대신 법에 예외 조항을 두는 등 별도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