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서울 동작구에서 부모님, 형제 둘과 함께 사는 최모(28)씨의 가족은 모두가 기초생활수급자다. 어머니와 최씨가 돈을 벌어와 5명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현재 최씨는 서울 한 지역자활센터에서 줄넘기와 지압기를 만들며 140만원을 받는데 아르바이트를 추가로 해서 돈을 더 벌고 싶지만 고민이다. 그러면 ‘기초생활수급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어서다.

5인 가족의 전체 소득이 월 241만원 이하이면 본인 부담을 제외한 급여 대상 항목 의료비 전액을 지원해준다. 아버지는 심한 당뇨, 어머니는 고혈압을 앓아 매달 약값과 병원비로 50만원 이상을 쓰는데, 소득이 늘어 수급자에서 벗어나면 이 부담이 고스란히 늘어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최씨는 “지원이 줄어들기 때문에 소득이 그 이상으로 크게 늘어나야 형편이 나아질텐데, 알바를 해서는 그럴 수가 없어서 런 게 아니라 걱정이 된다”고 했다.

경기 침체, 양극화 등으로 20~30대 기초생활수급자(이하 수급자)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2017년 14만9700명이었지만 올해 7월 기준 26만8600명으로 5년 만에 약 1.8배가 됐다. 하지만 청년 수급자들 사이에선 좋은 직장에는 취업이 어렵고 소득이 약간 늘어나는 정도로는 수급자 혜택을 잃는 만큼의 실익이 없어, 구직이나 경제활동을 소극적으로 하면서 수급자 지위에 안주하게 되는 ‘도덕적 해이’ 같은 부작용도 나타난다.

청년들은 부모의 사업이 실패하거나 큰 병을 앓는 사람이 생겨 가정 형편이 갑자기 나빠지는 바람에 수급자가 되기도 하고, 취업 실패나 실직 등을 겪으며 생계가 곤란해진 경우도 있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앞으로 이 같은 2030 청년 수급자는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런 청년들도 취업이나 창업 등으로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해야 사회에 활기가 돌지만, 현재 수급 제도는 청년들을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는 지적이 많다. 주로 부모·형제 등을 합해 가구 단위로 소득을 합산해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지원을 끊는 식으로 설계돼 있는 게 원인이다.

상당수 청년 수급자는 취업이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더 벌려고 할 때 고민에 빠진다고 한다. 자기가 일을 더 해서 ‘늘어날 소득’과 탈수급으로 ‘끊기게 될 가족 지원금’을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등 월급을 많이 주는 곳에 취업해 지원금보다 훨씬 큰돈을 벌면 문제가 없지만, 수급자 가정 청년 상당수는 비정규직이나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주로 하게 되는 고용시장의 약자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청년 수급자들은 형편이 어려워 갓 성인이 되자마자 당장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이른바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공부하고 경쟁할 여유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또 “봉급이 낮은 일을 하게 될 경우, 자기가 벌어오는 소득보다 본인이나 가족이 받던 지원이 줄어드는 걸 감안하면 경제적인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어 굳이 자립을 할 유인이 없는 게 지금의 복지 체계”라고 했다. 3인 수급자 가족 구성원이던 청년이 1인 가구로 독립해 수급자 신분에서 벗어나도, 남은 가족 두 사람은 여전히 수급자 신분인데 가족 수가 줄어 지원액이 줄어드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올해 기준으로 월소득이 153만원 이하인 4인 가족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이 가족의 소득과 153만원의 차액만큼을 생계급여로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조건에 따라 병원비나 월세 지원을 해주는 의료·주거급여 등도 나온다. 그 밖에 TV 수신료 면제나 전기요금 월별 최대 2만원 감면, 통신비 월 기본 2만6000원 감면, 도시가스나 지역난방 요금 감면도 있다. 이런 혜택을 크게 넘어설 정도로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한, 일을 하지 않고 수급자 신분에 머물게 하는 도덕적 해이가 유발되는 셈이다.

충남 천안시에서 부모와 사는 정모(22)씨도 최근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에서 정직원으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정직원이 되면 월급이 58만원에서 180만원으로 오르고 수급자에서도 벗어날 수 있지만 가족들이 받던 주거급여나 전기요금·수도세·가스비 할인 등이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구의 한 빌라 반지하에 사는 정모(27)씨도 비슷하다. 그는 3년간 운영하던 식당이 코로나로 손님이 줄자 작년 폐업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정씨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수급 제도를 통해 주거급여와 의료급여 등을 받는다. 일할 능력은 있지만, 하루 먹고사는 일이 어려워져 취업 준비를 할 여력 자체가 없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더 벌더라도 지원이 끊기니 실질적으로 늘어나는 소득은 얼마 안 되더라”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부 청년 수급자는 소득이 늘어나 지원이 끊어지지 않게 정부 감시를 피해 현금으로 월급을 주는 아르바이트만 찾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청년 수급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산을 모을 수 있게 일정 기간 소득이 늘어도 본인이나 가정에 대한 지원을 줄이지 않는 완충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년 안팎 일정 기간에 청년 수급자가 모으는 자산은 수급 자격 심사 때 반영하지 않는 걸 검토할 만하다”면서 “자산이 쌓여야 지원이 줄어도 이걸 감당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청년들이 취업을 준비하며 주로 하는 특정 아르바이트 소득은 수급자 심사 때 빼주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다만 이런 소득을 낭비하는 도덕적 해이를 막고, 취업에 성공하도록 이끄는 밀착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소득이 법정 최저생계비에 못 미쳐서 국가 지원을 받는 가구에 속한 사람이다. 개인이 아니라 가구 단위로 기초생활수급 여부를 정하고, 생계·의료·주거·교육 등의 분야에서 지원한다. 예컨대 2인 가구는 생계급여 지원 기준이 약 104만원(중위 소득의 30%)인데, 현재 소득이 80만원이라면 차액인 24만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