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피의자 전모(31)씨에게 ‘보복살인’ 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전씨의 혐의를 형법상 살인죄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으로 변경했다고 18일 밝혔다. 살인죄는 최소 형량이 징역 5년이지만, 형사사건의 수사나 재판에 대해 보복의 목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며 전씨가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정황을 여럿 발견하고, 보복살인 혐의에 무게를 두고 수사해 왔다. 우선 경찰은 전씨가 최소 11일 전부터 범행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 지하철 6호선 구산역에서 역무원 컴퓨터를 이용해 피해자의 근무지 정보 등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피해자와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던 그는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작년 10월 직위 해제됐지만 여전히 내부망 접속이 가능한 상태였다. 그는 범행 당일에도 두 차례 지하철역 2곳에서 내부 전산망에 접속했다. 경찰은 피해자 행적을 알아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줄잇는 추모 발길 - 지난 16일 오후 서울 지하철 신당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한 남성이 약 3년간 스토킹과 협박을 당하다 살해당한 역무원을 추모하는 글을 쓰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5시 이 주변에서는 1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 고인을 애도하는 집회를 여는 등 시민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장련성 기자

경찰은 전씨의 범행 당일 행적도 그가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정황 증거로 본다. 전씨는 범행 약 8시간 전인 14일 오후 1시 20분쯤 자기가 사는 서울 서대문구의 한 ATM(현금자동인출기)에서 1700만원을 찾으려고 했으나, 한 번에 뽑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 인출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범행 후 도주 자금으로 쓰려고 했던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전씨가 범행 당일 피해자의 옛 주거지 근처를 두 차례 찾아간 것도 확인했다. 오후 2시 30분쯤 집에서 나온 전씨는 서울 지하철 6호선 증산역 역무실에서 내부 전산망에 접속한 뒤, 피해자의 이전 집 인근인 6호선 구산역 일대를 2시간 가까이 배회했다. 이 과정에서 한 여성을 7분 가까이 따라다닌 정황도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지금도 구산역 근처에서 살고 있는 줄 알고 근처에 갔다가 피해자와 닮은 여성을 따라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를 못 만난 전씨는 오후 6시쯤 구산역 역무실에서 재차 내부망에 접속한 뒤 피해자의 예전 집 근처를 또 한 번 찾아갔다. 오후 7시쯤엔 지하철을 타고 신당역으로 향했다. 이때 전씨가 승하차 기록이 남지 않는 일회용 승차권을 쓴 것도 보복 살인의 정황 근거다. 신당역에 도착한 전씨는 오후 8시 30분쯤 역 안에서 이날 처음으로 피해자를 봤고 오후 9시쯤 피해자가 순찰을 돌러 화장실로 들어가자 따라가 범행을 저질렀다. 전씨는 경찰에서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고 우발적인 범죄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17일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태블릿PC와 외장하드 등을 확보했다. 앞서 압수한 휴대전화와 함께 추가 범죄 정황이 있는지 분석 중이다. 경찰은 19일 오후에는 피의자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전씨의 얼굴, 이름, 나이 등을 공개할지를 결정한다.

한편 피해자에 대한 시민 추모도 이어지고 있다. 18일 낮 범행 현장인 신당역 화장실 앞에는 추모하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기도 했다. 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뿐만 아니라 지상의 신당역 10번 출구 등에도 추모 쪽지와 꽃다발이 계속 쌓이고 있다. 이날 현장을 찾은 한 20대 여성은 “경찰에 신고했는데도 살 수가 없었던 피해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