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재현의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합니다.

영화 '신세계' 속 신입경찰 이자성(이정재)은 범죄 조직 '골드문'에 잠입해 내부 자료를 빼돌린다. /NEW

영화 ‘신세계’는 경찰 수사기획과 강 과장(최민식)이 신입경찰 이자성(이정재)에게 국내 최대 범죄 조직 ‘골드문’에 잠입 수사를 명령하면서 시작됩니다. ‘골드문’이 기업형 조직으로 점점 세력을 확장하자 이자성을 통해 내부 자료를 얻어내기 위해서였죠.

우리는 조직의 보스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 경찰이 신분을 속이고 조직의 일원이 되는 내용의 영화를 자주 접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국에서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일입니다. ‘n번방’ 사건처럼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만 위장수사가 허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온라인을 활용한 마약범죄가 조직적이고 첨단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막을 방법은 없는 걸까요?

◇요즘 마약류 범죄의 새로운 특징이 있다면서요?

온라인을 통한 마약류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익명성을 가진 ‘다크웹’ 혹은 ‘딥웹’을 이용해 마약류를 거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여기에 거래 수단도 익명성이 있는 암호화폐로 하고 있어 마약류 범죄가 지능화, 첨단화, 국제화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됐던 2020년 적발된 마약사범은 1만8050명으로, 전년도보다 오히려 2000명가량 늘어났습니다. 역대 최고 수치이기도 합니다. 마약 거래가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온라인에 익숙한 세대가 유혹에 빠지기 쉽겠는데요?

4월 1일 캄보디아에서 국내로 강제송환된 마약 밀수입 조직 총책 A씨에게서 압수한 필로폰 일부 물량. /경기북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제공

그렇습니다. 10대 마약 사범은 2011년 41명에서 2021년 450명으로 11배 급증했습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마약사범 중 10~20대가 35%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합성 마약인 향정신성의약품(향정)이 많아진 것도 이유입니다. 양귀비로 만든 마약, 혹은 대마와 달리 향정 마약류는 작은 알약이나 입에서 녹는 필름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처음 접할 때 마약인지 모르거나 마약이라고 해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온라인에서 쉽게 거래되는 마약을 통제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마약사범보다 국내 수사기관이 더 지능화, 첨단화, 국제화되어야 합니다. 범죄자는 디지털 시대에 맞추어 범죄를 첨단화하는데 수사방식은 1970년대 아날로그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면 마약사범 근절은 요원합니다. 마약 수사 방식에 ‘잠입수사’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현재 마약수사를 하려면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만 가능합니다. 마약을 판다는 채팅방에 들어가 구매자인 척 접근하는 방식인 거죠. 경찰이 먼저 “마약 사고 싶다”는 글을 올려도 안 됩니다. 범죄를 유발했다는 이유로 재판에서 증거로서 인정받지 못하죠.

또, 이런 방식으로 마약 판매자를 잡았다 한들 가장 말단 조직원 한 명을 붙잡는 데 그칠 우려가 있습니다. 조직 전체의 운영 방식을 꿰뚫고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는 잠입수사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경찰도 잠입수사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요?

텔레그램 등에서 은밀하게 거래되는 아동 성 착취물 등을 잡아내기 위해 지난해 9월 신분을 숨기고 잠입하는 위장 수사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경찰은 이후 다섯 달 동안 위장 수사로 96명을 검거하고, 이 중 혐의가 무거운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조선DB

네. 경찰은 최근 주요 정책과제 중 하나로 위장수사를 마약류 및 불법 도박 수사에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영국, 독일, 미국 등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만약 위장수사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마약류거래방지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현실에서 ‘신세계’ 속 이정재를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대책으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마약사범 통제를 위해서는 범정부 기구가 필요합니다. 첫째, 마약이 국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국경선 차단을 잘해야 합니다. 국정원과 관세청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둘째, 마약범죄를 단순히 강력·조폭 범죄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금전적 이익이 가장 중요한 범죄 목적입니다. 이들의 불법 수익을 발본색원할 수 있는 국제사법 공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검찰과 경찰, 금융정보분석원과 국세청이 함께 나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약사범을 잡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재활치료를 돕고, 신종 마약은 빠르게 임시마약류로 지정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할 일이죠.

누가 컨트롤타워가 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당장 호기심 많은 청소년이 마약에 손대는 것을 막아야 하니까요. 마약사범은 청소년을 가장 좋아합니다. 오랜 기간 마약을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 /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