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퇴르유업과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세웠던 최명재(崔明在·95) 민사고 이사장이 26일 오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설립한 최명재(95) 이사장

최 이사장은 1927년 전북 김제시에서 태어났다. 만경보통학교, 전주북중을 나와 경성경제전문학교(현 서울대 경영대)를 중퇴한 뒤 상업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돈을 더 벌겠다는 각오로 은행도 그만두고 택시 운전에 뛰어들었다. 여기서 얻은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1960년대 운수회사(성진운수)를 세웠고, 1970년대엔 물류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모았다. 60세 되던 1987년 강원 횡성에 파스퇴르유업을 설립하고, ‘저온살균 우유’를 앞세워 기존 우유 업계를 공격하는 직설적 마케팅으로 화제를 모으며 급성장했다.

1996년에는 횡성 파스퇴르유업 공장 옆 127만2700㎡(38만5000평) 땅에 민사고를 세웠다. ‘민족 주체성 교육’을 통해 세계적인 지도자와 노벨상을 탈 수 있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목표였다. 1970년대 영국 이튼스쿨을 방문했을 때 넬슨 제독 전승 기념 행사를 보면서 “한국에는 넬슨보다 훌륭한 이순신 장군이 있는데, 이튼 같은 학교는 없다”고 생각하며 가진 필생의 꿈을 실천에 옮겼다. 학교 표상(表象)이 이순신 장군과 정약용 선생이다.

초기엔 최 이사장이 파스퇴르유업 수익을 매년 30억~50억원 민사고에 투자하면서 우수 학생을 뽑아 기숙사비를 포함, 교육비를 받지 않고 운영했다. 모두 1000억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98년 IMF 외환 위기로 파스퇴르유업이 부도 처리되면서 재정난을 겪은 후로는 등록금으로 운영한다.

민사고는 재학생들이 개량 한복을 입고 아침·저녁으로 교사에게 문안 인사를 하는 등 남다른 학풍(學風)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졸업생들은 서울대를 비롯, 국내 명문대뿐 아니라 스탠퍼드·코넬·듀크·케임브리지·홍콩과기대 등 전 세계 유명 대학으로 다양하게 진학하고 있다.

최 이사장은 민사고 설립 초기 직접 교장을 맡아 학교를 이끌기도 했다. “나는 장사꾼이다. 기왕 장사를 시작한 바에는 큰 장사를 하려고 한다. 창조적인 천재 한 사람이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학교를 만들고 영재를 교육해 장차 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게 한다면 나로서는 수천, 수만 배 이익을 얻는 셈이 아니겠는가”라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장례는 학교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8일 6시 20분. 영결식은 28일 오전 9시 민사고에서 열리며 장지는 민사고가 자리한 횡성군 덕고산 자락이다. 유족은 부인과 장남인 최경종 민사고 행정실장 등 2남 2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