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경관이 지난해 4월 15일 B씨 집 앞에 출석요구 메모를 붙여놓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그 직후 그는 다시 메모를 떼어냈다. 당연히 B씨는 메모를 보지 못했다. /B씨 제공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소환 대상자에게 정식 출석요구 절차도 밟지 않고 법원을 속여 곧바로 대상자를 체포했다는 주장이 증거 영상과 함께 제기됐다. 경찰은 법원에 체포영장을 신청하면서 ‘소환 대상자의 집 현관문에 출석을 요구하는 메모지를 붙였지만 회답이 없었다’는 취지로 소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경찰관은 메모지를 현관문에 붙여놓은 모습을 증거용으로 촬영만 하고는, 놔두지 않고 곧바로 떼어내는 장면이 CCTV에 남았다.

21일 조선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청주지방검찰청은 충주경찰서 소속 A 경관의 직권남용에 관한 진정을 접수하고 사건을 파악하고 있다. 검찰에 접수된 진정에는 ‘경찰이 사기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 B씨에게 정식 출석요구도 없이 곧바로 체포했으며, 그 과정에서 경찰이 법원을 속이기까지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피의자 B씨는 작년 5월14일 충주법원에 일을 보러 갔다가 갑자기 나타난 경찰관들에게 사기 혐의로 체포됐다. 렌터카 업체를 운영하면서 고객들을 상대로 렌탈료를 대폭 지원해 준다며 미리 차량가액의 일정금을 선납으로 납부 받아, 그 돈을 편취한 혐의였다. 하지만 B씨는 “혐의는 재판이 진행중이니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 내가 체포된 과정만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B씨에 따르면, 경찰은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집 현관문에 출석을 요구하는 메모지를 붙였고, 정식 출석요구서도 두 번이나 등기로 보냈는데 불응했으므로 체포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출석요구를 받지 못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B씨와 가족은 강하게 반발했다. 메모지를 본적도, 등기우편을 받은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출석해달라는 메모지를 붙였다는 날의 현관문 CCTV를 확인했다. 영상에는 경찰관들이 메모지를 붙이고 증거용 사진만 찍은 뒤, 곧바로 메모지를 떼어가는 모습이 남아 있었다.

경찰 거짓말로 체포영장

등기우편의 경우는 더욱 황당했다. B씨 측이 “도대체 등기를 언제 보냈다는 거냐”며 정확한 날짜를 요구하자, 경찰은 뒤늦게 등기를 보내지 않은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B씨 아내에게 “(우리) 등에 칼을 안 꽂으면 (사건을 잘 처리) 해드릴 수 있어”라고 회유하기도 했다고 B씨 측은 주장했다. B씨 측은 해당 녹취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B씨 측 주장의 사실관계는 시인하면서도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A 경관은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그 메모지는 정식 출석요구서가 아니라 메모지에 불과했다”라며 “(B씨가 집에 있나) 혹시나 해서 찾아가 본 것이고 굳이 제 연락처를 남길 필요가 있겠나 싶어 뗀 것”이라고 했다. 마음을 바꾼 이유에 대해선 “B씨가 이미 도망간 상태라고 알았고, 메모지를 남길 경우 가족들의 연락으로 더욱 멀리 도망할 것으로 예상돼 메모지를 떼어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 문제가 안 되는 내용”이라고 했다.

출석요구서 발송에 관해 허위 사실을 말한 데 대해서는 “(경찰에서) 누군가가 출석요구를 했을 줄 알고 그렇게 말했지만 B씨 측이 문제를 제기해서 확인해보니 출석요구를 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어서 정정한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체포된 B씨는 9개월가량 구치소에 수감됐다가 최근에야 보석으로 석방됐고, 지금은 집과 법원을 오가며 재판을 받고 있다.

B씨 측은 A 경관의 행위에 대해 경찰서에 진정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검찰에 다시 진정을 냈다. B씨는 “경찰이 모든 사실이 인정된다면서도 직권남용이 아니라는 것은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며 “검찰에 보여줬더니 담당 검사님이 CCTV 영상 등을 보고 ‘왜 저렇게까지 했지?’라며 놀라더라”라고 했다. 이어 “해당 경관은 납득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나를 구치소에 집어넣은 뒤 특진까지 했는데, 그 배경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B씨는 “재판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수사와 재판을 피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며 “고객들이 집에까지 찾아와 변제를 요구하는 바람에 잠시 거주지를 옮겼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 다른 경찰서에서 아내에게 연락했을 때, 내가 직접 해당 경찰서에 콜백을 한적도 있다”고 했다. 이어 “경찰이 출석요구를 정식으로 했다면 응했을 것”이라며 “결국 제가 돈이 없어서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 영장실질심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해 체포됐던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