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양주의 3300㎡(1000평) 규모의 딸기 농장. 비닐하우스 안에 줄지어 있는 딸기 2만7000여 포기 사이로 30~60대 초반의 남성 20여 명이 땀을 흘리며 줄기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년 농사에 대비해 줄기를 자르거나 뿌리를 뽑은 뒤 다시 흙을 덮는 일이다. 이들은 모두 의정부보호관찰소에서 온 사회봉사 명령 대상자들이다. 음주운전이나 폭행, 절도와 같은 경범죄로 법원에서 적게는 80시간, 많게는 16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이곳에 배치됐다. 폭행 혐의로 120시간 봉사 명령을 받았다는 회사원 김모(37)씨는 “벌 받는 개념으로 일하러 오는 거라 처음에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농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정말 고마워하니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24일 오전 경기 양주시의 한 딸기 농가에서 법원으로부터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줄기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최근 전국 곳곳의 농촌에선 일손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한창 수확을 하거나 내년 농사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5~6월은 농촌에선 일손이 가장 필요한 시기다. 하지만 수년간 이때쯤 농촌을 돌며 일당을 받고 일했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코로나 2년을 겪으면서 한국을 떠난 뒤 돌아오지 않고 있어 곳곳이 비상이다.

하지만 요즘 ‘구원투수’로 주목받는 이들이 있다. 경범죄자 등으로 구성된 사회봉사자들이다. 법무부는 매년 전국의 복지 시설이나 농어촌 등에 법원에서 봉사 명령을 받은 사회봉사자를 배치해 각 시설이나 마을 일을 돕도록 하고 있다. 지난 2020년만 해도 농촌에 사회봉사자 약 7만8000명을 배치했다. 하지만 작년에는 이 숫자를 18만명으로 대폭 늘렸다. 올해도 20만명을 투입할 계획이다. 사회봉사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일손 부족을 겪던 전국 곳곳에서 지원 요청이 끊이질 않아서다. 법무부 관계자는 “기존에는 노인 시설 등에도 봉사 명령을 받은 사람들을 배치했지만 이런 곳들은 코로나 감염 우려 탓에 봉사가 어려워진 반면, 농촌은 야외라 감염 우려가 적은 데다 일손 부족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경기도에서 1만1570㎡(3500평) 규모의 오이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상욱(50)씨도 지난 24일 사회 봉사자 2명과 함께 오이 1만개를 수확했다. 한씨는 “네팔에서 들어오기로 한 노동자가 들어오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사회봉사자들 도움으로 제때 출하를 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사과 농장주 문명성(57)씨도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문씨는 “코로나 이전 8만원이던 일당을 13만원으로 올려도 온다는 노동자가 없어서 발만 구르고 있었다”며 “올해는 사회봉사자 20여 명의 도움으로 겨우 작업을 마쳤다”고 했다. 그는 “농장주들이 처음에는 꺼리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다들 고맙다고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노숙인들로 구성된 봉사자들도 농가를 돌며 일을 도와줘 인기다. 지난 19일 오후 2시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훼단지에 있는 한 허브 농장에선 작업자 9명이 9000개의 화분을 옮겨 심는 작업을 돕고 있었다. 이들은 서울 은평구 노숙인 시설 은평의마을에서 나온 봉사자들이다. 이 시설에 머물고 있는 박모(51)씨는 “항상 사회에서 도움만 받다가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니 기쁘다”고 했다.

전국 농가 곳곳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도움이 절실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일손 부족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농업 분야 등에서 일하기 위해 비전문 취업(E-9) 비자를 받고 국내에 입국한 캄보디아·네팔 등 국적의 외국인 수는 지난 2019년 15만1116명에서 2020년 4만1992명, 작년에는 1만500명으로 급감했다. 올해는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4월까지 1만4000명 입국하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