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소기업에 다니는 A(38)씨는 대학 때 여성학 강의를 듣고 친구들과 세미나를 열 정도로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다. ‘페미니즘의 도전’ ‘이갈리아의 딸들’ 같은 책을 읽었고, 한 살 어린 여자 친구에겐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혹시 모를 위계(位階)가 작용할까 두려웠고 그것이 페미니즘의 작은 실천이라 믿었다. 하지만 요즘은 페미니즘이 뭔지 혼란스럽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 들어 남녀 갈등이 증폭되고 공격적 페미니즘이 대세를 이룬 탓이다. “지금 통용되는 페미니즘은 내가 배운 페미니즘이 아닌 것 같다”는 그는 “문 정부가 페미니즘을 자신들 이익을 위해 이용하면서 본래 의미를 상실했다. 이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이 유쾌하지 않은 일이 됐다”고 했다.

1977년 이화여대 학부 교양 과목으로 개설되면서 태동한 여성학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수난을 겪고 있다. 젠더 갈등이 지속되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지고, 남녀 모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16세 이상 남녀 1786명을 대상으로 공동 조사한 ‘2022년 대한민국 젠더의식 조사’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느낌을 물었더니 국민 절반(49.8%)이 ‘과거엔 긍정적으로 느꼈으나, 이제는 피로감이 들어 관심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피로감은 남성(46.4%)보다 여성(53.2%)이 더 높았다.

한때 남학생들에게도 교양 과목으로 인기를 끌던 여성학 강의도 외면당하고 있다. 수강 인원이 없어 폐강되는가 하면 여성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향해 온라인 공격이 이뤄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