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한 그릇 가격이 1만원을 넘어서는 등 외식 물가가 치솟으면서 가성비가 좋다고 알려진 전통시장의 먹자 골목이나 도심 곳곳의 기사식당, 포장마차 등에 ‘때아닌 호황’이 찾아왔다. 50대 이상 손님이 주를 이루던 시장 먹자골목에 낮 시간 양복 차림의 직장인들이 단체로 오거나, 대학가 주변 기사식당이 학생들로 북적이는 풍경이 나타난다.

지난 18일 오후 1시쯤 서울 종로구 동묘 벼룩시장의 한 골목. 폭 2.5m 남짓한 거리에 여러 음식점이 내놓은 간이 식탁과 의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 가게들은 길가에 천막을 치거나 식탁·의자를 꺼내두고 장사를 하는데 10여 개의 자리가 모두 꽉 차 있었다. 이 중 한 순댓국집에서는 토종순댓국을 5000원, 녹두삼계탕을 7000원에 팔고 있었다. 직장 동료와 함께 식사를 하러 왔다는 김모(32)씨는 “5000원 주고 고기 듬뿍 들어간 순대국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서울 어딜 뒤져봐도 여기밖에 없어서 자주 오게 된다”고 했다. 이 가게는 코로나 사태가 한창일 때는 하루 매출이 30만원 안팎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매출이 오르더니 지금 하루 60만원어치를 판다고 한다. 사장 박종윤(62)씨는 “주중 점심에 인근 직장인들이 찾아오고, 주말엔 젊은 커플들이 오는 등 손님이 다양해졌다”면서도 “8년째 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데 올해 들어 순댓국에 들어가는 돼지머리가 두당 1만4000원에서 1만7000원까지 오르는 등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인근에서 튀김집을 하는 김정현(66)씨는 “4000원에 고기튀김을 먹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서울 강서구에서까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생겼다”고 했다.

도심에서는 택시기사 등이 주로 찾는 기사식당이 인기다. 서울 송파구의 한 기사식당은 최근 20, 30대 젊은 손님이 2배가량 늘었다고 한다. 이 가게는 돼지불백 등을 8000원에 팔고 있는데 밥과 반찬을 뷔페식으로 이용 가능하다. 가게 사장 김영화(47)씨는 “밥과 반찬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어서 매일 젊은 손님이 20명 이상씩 온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기사식당 사장 방모(55)씨는 “요즘 점심시간에는 직장인과 대학생이 더 많다”며 “손님 100명 중 40~50명이 20, 30대”라고 했다.

밤에는 포장마차에 사람이 북적인다.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인근의 포차골목은 저녁 시간 이후엔 자리 잡기 전쟁이 시작된다. 이 골목에서 2대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김모(49)씨는 “2명이 술집에 가면 기본 안주 2만원에 소주도 5000원인데, 여기는 1만2000원짜리 오돌뼈 하나 시켜두고 4000원에 소주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전통시장이나 기사식당 등의 상인들은 이런 때아닌 호황이 반갑지만은 않다고 했다. 고물가로 재료비가 치솟으면서 많이 팔아도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기사식당 사장 이우학(66)씨는 “짜장면과 우동을 4500원에 팔고 있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이달 500원씩 올렸다”며 “손님이 늘었지만 별로 남는 게 없어 속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