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아들을 둔 김모(45)씨는 지난달 아들과 함께 성교육 학원을 찾았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이가 성적(性的) 콘텐츠에 노출될 우려가 높아졌지만, 학교 성교육은 ‘생물 수업’의 연장이라고 해도 될 만큼 신체 구조에 관한 설명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학원에 돈을 주고라도 아들에게 올바른 성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가 늘고, 사회적으로 성평등 인식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지난 성교육 답습에,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 없이 중구난방 이뤄진다는 것이다.

전국 초∙중∙고교는 2015년 교육부가 보급한 ‘성교육 표준안’에 따라 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해당 표준안은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이성친구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성관계는 늦으면 늦을수록, 성관계 파트너가 적으면 적을수록 성매개 감염병을 예방할 수 있다’ ‘여성은 한 특정 남성에게만 성적으로 반응하는데 비해 남성은 성적으로 매력적인 여성들과 널리 성교할 수 있다’ 등 왜곡된 성인식을 조장하는 내용들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후 문제 된 표현들은 삭제됐지만, 새 개정안은 보급되지 않은 상태다. 교육부가 연구 용역을 올렸지만, 나서는 연구자들이 없어 세 차례나 유찰됐고 현재는 아예 중단된 상태다.

고등학교 보건교사 김모(53)씨는 “사실상 국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없어 각 시·도 교육청에서 만든 자료를 사용하는데, 수업 주제와 제목 정도만 알려주는 수준이라 교사에 따라 성교육의 방법과 내용이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여성가족부가 초등학교에서 성교육 자료로 쓸 수 있도록 배포한 도서 중 일부는 외설 논란을 빚기도 했다. 덴마크 그림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남녀간 성행위를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해 여가부가 해당 책을 회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20년 전남 담양의 한 고교에선 교사가 ‘임신과 출산’ 단원을 가르치던 중 바나나에 콘돔을 씌우는 수업을 계획했다가 학부모들 항의로 취소됐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에게 어떤 성교육을 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없다 보니 여러 논란이 생기고 교사들이 성교육을 사실상 방치하는 일이 벌어진다”며 “양성평등, 성인지, 성폭력 예방 교육까지 포괄하는 성교육 가이드라인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