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한 고등학교 교사 A씨는 “성교육을 하다 보면 남학생들에게 종종 ‘선생님도 페미냐’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그는 “한 남학생은 수행평가 답안지에 나를 ‘짱깨(중국인을 비하하는 말) 페미 여교사’로 비하한 낙서를 해놨더라”며 “충격이 커서 심리치료까지 받았다”고 했다.

일선 교사들은 “남녀 갈등이 깊어지면서 학생들이 자기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까지 ‘페미’ ‘반페미’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고 했다. 일부 학생은 정규 교육과정에 나오는 내용을 가지고 ‘특정 성(性) 편들기’라며 항의한다고도 했다.

지난해 경남의 한 남자중학교에서는 한 남학생이 교사들에게 돌아가며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느냐”고 묻는 일이 있었다. 이 학생은 “페미 책을 읽은 교사에게는 배울 것이 없다”면서 책을 읽었다고 답한 교사들이 진행하는 수업 시간엔 잠만 잤다고 한다. 이 학교 교사 A씨는 “요즘 학생 상당수는 극단적 유튜버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상대 성별을 ‘적(敵)’으로 규정한다. 해당 남학생도 그런 경우였다”고 했다.

인천 지역 남자중학교 교사 박정현(한국교육정책연구소 부소장)씨는 “1학년 남학생들에게 자유 토론 주제를 정하자고 하면 앞다퉈 ‘여가부 폐지’를 외친다. 여자 선생님 앞에서 여성을 욕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고 했다. 여학생들의 젠더감수성은 더 예민하다. 박정현 교사는 “아내는 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데, 신동엽 시인의 시 ‘새로 열리는 땅’ 중 ‘고동치는 젖가슴 뿌리세우고’란 표현이 ‘여성혐오적’이라며 책을 덮어버린 여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남녀 학생들의 인식 차가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본지가 한국교총과 함께 전국 초·중·고교 교사, 대학교수 175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 응답자 7명 중 1명(15.1%)은 ‘최근 3년간 학생들로부터 성차별적 발언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한 30대 초등학교 교사는 “남학생들이 ‘선생님은 왜 화장 안 하느냐’ ‘머리가 짧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지듯 물어 당황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다른 중학교 교사도 “한 학생이 ‘저 선생님은 페미’라고 못 박고 다른 학생들에게 소문을 내고 다녔다”고 했다.

학생이 직접 교사를 희롱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기 지역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김은혜(40)씨는 “초등학교 고학년 남학생이 갑자기 내 앞에서 성기를 보이며 ‘이제 나를 평생 못 잊을 것’이라고 했다. 여성 교사에 대한 공격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되면서 교사들은 종종 ‘외부 공격’에 시달리기도 한다. 모출판사의 사회문화 교과서를 공동집필한 고등학교 교사 B씨는 구독자 수십만명을 거느린 남성 유튜버에게 공격당했다. 유튜버가 교과서에 수록된 ‘성 불평등’ 단원을 문제 삼아 페미들이 만든 쓰레기 같은 교과서라고 비난하자 욕설 등 댓글 5000여 개가 순식간에 달렸다. B씨는 “교과서는 교육부 지침대로 만들기 때문에 출판사별 내용의 차이가 크지 않은데도 문장 하나하나를 트집 잡아 조롱하더라”면서 “책에 집필진 이름과 소속 학교까지 공개돼 있어 공포감마저 들었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