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여성 강모씨는 올 초 육아휴직 중 승진 심사 대상이 돼 면접에 들어갔다가 임원에게 “승진할 만한 연차가 되면 아이 갖는 시기를 조절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책성 질문을 받았다. 그의 이름은 결국 승진자 명단에 없었다. 강씨는 “휴직 기간 성과가 없었으니 고과 점수가 낮은 건 납득한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했다는 이유로 무책임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면 계속 회사를 다니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0.81명이지만 기업은 아이 낳는 여성을 반기지 않는다. ‘사업주는 근로자가 1년 이하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반드시 허용해야 하고 육아휴직을 마친 후에는 휴직 전과 동일한 업무나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근로자를 복귀시켜야 한다’고 남녀고용평등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경력 단절 여성은 145만명으로 15~54세 기혼 여성 중 17.4%를 차지한다.

여성의 경력 단절은 일명 ‘M자형’ 고용률 그래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의 고용률은 20대에서 남성 고용률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가 출산과 육아 시기에 급락한다. 지난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5~29세 여성의 고용률은 70.9%로 또래 남성(66.4%)보다 높지만, 30대에 들어서면 떨어지기 시작해 35~39세 구간에선 여성이 57.5%, 남성이 90.7%로 완전히 역전된다.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은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중소기업이나 취약 계층에서 더 두드러진다. 출산 휴가 급여와 육아휴직 급여는 고용보험 가입자만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모성 보호 위반 적발 건수를 보면, 50인 미만 사업장에선 882건, 50~99인 사업장에선 350건, 100~299인 사업장에선 235건, 300인 이상 사업장은 116건으로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위반 사례가 많았다.

그래픽=송윤혜

육아휴직을 보장받아도 경력 단절을 피해 가기는 쉽지 않다. 중견 기업에 다니는 김모(36)씨는 회계 업무를 10년간 해오다가 첫째 아이 육아휴직을 다녀온 뒤 정보통신(IT)팀으로, 두 번째 육아휴직 뒤엔 회사 홍보전시관으로 발령이 났다. 김씨는 “회계만 하던 내가 할 수 없는 개발이나 전시 업무를 맡긴 건 사실상 회사를 나가란 얘기나 다름없다”고 했다.

질 높은 보육 시설의 부족도 문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발표한 보육 실태 조사에서 부모들이 가장 원하는 육아 정책 1순위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22%)으로 육아휴직 제도 정착(14.8%)보다 높았다. 그러나 지난해 말 기준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은 22.7%이고, 직장 어린이집·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까지 다 합쳐도 공공 보육 비율은 34.3%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가사 부담과 자녀 입시도 경력 단절을 부추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맞벌이 부부 중 여성은 가사 노동과 육아를 하루 평균 3시간 7분 한 반면, 남성은 54분만 했다. 광고 회사에 다니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 회사를 그만둔 한주연(40)씨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경력 단절의 분기점으로 꼽았다. 코로나도 퇴사 이유였다. 그는 “엄마가 옆에서 도와주는 집 아이들은 원격 수업을 잘 따라가는데, 혼자 컴퓨터 앞에 있는 우리 아이는 딴짓하며 시간 보내는 걸 알게 되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여성 경력단절은 성별 임금 격차나 저출산율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와 직결된다. 본지 설문조사에서 ‘이상적인 자녀 수’로 과반(55.3%)의 응답자가 ‘2명’을 꼽았지만 현실에서 한국의 출산율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전체 응답자의 72%가 ‘여성 경력 단절의 원인은 출산과 육아’라는 데 동의했고, 20~30대 여성 10명 중 7명은 ‘자녀를 가지면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