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강모(31)씨는 “남직원만 숙직을 세우는 회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기관은 매일 직원 두 명이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숙직을 서는데, 여직원은 숙직 대상에서 빠진다. 강씨는 “과거엔 술 취한 사람이 건물로 들어오는 등 위험한 상황이 많았다고 하지만, 요즘은 CCTV와 보안 센서 덕분에 돌발 상황이 거의 없다”면서 “밤새우는 건 남자도 똑같이 힘들다. 왜 남자라고 더 고생해야 하나”라고 했다.

서울 용산구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남성들이 택배 상차 작업을 하는 모습. /장련성 기자

젊은 남성들은 ‘시대가 변했는데 왜 아직도 험한 일은 남자만 시키느냐’고 한다. 정부기관과 기업 등이 겉으로는 남녀평등을 외치지만, 곳곳에서 ‘남자니까’라는 편견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사회의 당직이 대표적이다. 통상 당직은 공휴일 낮 시간대에 근무하는 일직과 야간에 근무하는 숙직으로 구분되는데, 대부분 지자체에선 숙직은 남성만 서고 여성은 일직을 서는 관행이 남아 있다. 야간 순찰 등을 맡는 숙직이 여성에게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전체 공무원 중 여성 공무원 비율이 47.9%(2020년 기준)에 달하는 상황에서 남성만 숙직에 투입되는 건 불합리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6월 지방선거에서 남녀 통합 숙직제를 공약으로 낸 하은호 군포시장 후보(국민의힘)는 “합리적 이유 없이 관성적으로 남성들만 숙직을 서는 것은 시정돼야 한다”고 했다. 정부 부처의 한 차관급 인사도 “숙직도 안 하면서 양성 평등을 외쳐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서울시와 경기, 경남, 충북의 일부 지방자치단체 등은 성별 구분 없이 숙직 업무를 맡기는 ‘남녀 통합 숙직제’를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이다.

교직 사회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기피 지역에 남교사를 주로 배치하고, 학교 안에서도 남교사들에게 궂은일을 맡긴다는 것이다. 한 50대 고등학교 교사는 “여교사가 정수기 물통 교체하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우리 몫”이라고 했다. 교육청 교육통계 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초등학교의 여교사 비율은 86.8%였다. 기피 지역으로 꼽히는 전남(61.8%), 경북(63.6%), 강원(66.7%)과는 최대 25%포인트가량 차이 났다. 한 지방 교육청 관계자는 “같은 시도 안에서도 섬 같은 기피 지역 학교의 여교사 비율은 더 낮을 것”이라면서 “근무 평정이 비슷할 땐 남교사를 도서 산간 지역에 우선 배정한다”고 했다.

택배 분류 등 일용직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힘든 일은 남성이 한다’는 관행이 남아 있다고 했다. 한 택배업체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자주 했던 대학생 정모(26)씨는 “4명이 팀으로 일하는데, 여성이 끼어 있으면 제일 쉬운 재포장 업무를 맡긴다”면서 “한겨울에 땀 뻘뻘 흘리며 일한 남자나, 쉬운 업무를 맡은 여자나 같은 임금을 받는 건 불공평한 것 아니냐”라고 했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업무를 공평하게 배정하려 노력하지만, 상하차는 대부분 여성이 못 버텨 남성들에게 맡긴다”고 했다.

육아 휴직을 최대 3년 쓸 수 있도록 한 공직 사회도 시끄럽다. 한 전직 검사장은 “여성 수사관이 육아 휴직, 배우자 해외 파견에 따른 동반 휴직 등 온갖 제도를 끌어다 9년 가까이 휴직한 적 있다”면서 “검찰청 TO(정원)는 잡아먹는데, 그렇다고 복직을 강제할 수도 없어 답답했다”고 했다. 한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도 “애초 복직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육아휴직을 내서 정부 지원금을 받고, 복직한 직후 퇴직해 실업급여까지 챙기는 여성들도 있다”고 했다. 한 사립중·고등학교 재단 이사장은 “나도 여성이지만 여자 교사들이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아 연달아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가 늘어 그 공백을 메꾸기 힘들다”면서 “조직을 배려하는 마음도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