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로 소비 제약 요인은 일부 완화되고 있지만, 대외 불확실성으로 수출회복 제약이 우려되고 물가상승세 확대가 지속되고 있다고 경기를 진단했다.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2.5.13/뉴스1

서울 종로구의 무료 급식소인 사회복지원각은 매일 400여 어르신에게 점심 무료 배식을 한다. 그런데 최근 잡채에 넣는 재료를 표고버섯에서 양파와 당근으로 바꿨다. kg당 8000원 선이던 표고버섯 가격이 최근 1만1000원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계란 값도 올라 짜장밥에 삶아 올리던 계란 한 개를 반 개로 줄였다. 이곳에서 8년간 총무 업무를 본 강소윤(55)씨는 “물가가 치솟으면서 장 보는 비용이 월 1800만원씩 들었는데 최근 2300만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최근 식품 물가가 치솟으면서 당장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취약 계층의 밥상부터 물가 충격이 시작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등에게 정기적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복지 단체 등은 반찬 가짓수나 양을 줄이고, 반찬도 더 싼 것으로 바꾸는 등 어쩔 수 없이 식단을 조절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서 매주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무료 점심을 주던 행복복지센터는 지난달부터 토요일 배식을 없애기로 했다. 1.5인분 식사를 담을 수 있던 도시락 통도 1인분 크기로 줄였다. 이곳에서 18년째 무료 급식을 하는 박세환(52) 원장은 “예전 수준으로 고기 반찬을 자주 드리려면 배식 인원을 200명에서 150명으로 줄여야 해서, 그 대신 양을 줄이고 더 싼 반찬을 늘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매서운 물가 상승세 탓에 취약 계층에게 식사를 지원해왔던 각종 시민 단체, 복지 센터 등은 비상이 걸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4.8% 올라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3년 6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강동구 행복복지센터는 어르신들에게 제공하는 무료 식사에 일주일에 2~3회 정도는 소불고기, 제육볶음, 코다리조림 등 고기·생선 반찬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최근 이런 반찬을 내는 걸 절반수준으로 줄였고, 가지·호박나물 반찬 비율을 더 늘렸다. 센터 관계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후원금은 월 250만~300만원 정도로 변화가 없는데 물가가 올라 예전 수준 식단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에서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 200여 명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단체 ‘살맛나는공동체’도 노숙인 등에게 하루 점심과 저녁 때 3개씩 주던 계란 프라이를 이제는 2개만 준다. 계란 프라이는 인기 메뉴여서 넉넉하게 줬는데, 계란 값이 한 판(30개)에 5000원에서 7000원으로 오르면서 양을 줄인 것이다.

노숙인과 어르신 400~500명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의 밥퍼나눔운동본부는 최근 거래하던 축산 업체에서 호주산 불고기·사태·양지, 국내산 돼지 엉덩이 살 등 고기 가격을 20%~36%까지 인상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곳은 종전에 소고기뭇국, 장조림, 제육볶음을 1주일에 6번씩 내곤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반찬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김미경 밥퍼본부 부본부장은 “지난 3~4월 월평균 고기 값으로 400만원쯤 썼는데, 앞으론 월 80만원이 더 들게 생겼다”고 했다.

취약 계층 아이들에게 식사와 간식을 제공하는 지역아동센터도 각 구청을 통해 아동 1인당 배정되는 7000원 안에서 식단을 어떻게 짤지 고민이라고 한다. 서울 종로구 한 지역아동센터의 급식 담당 교사는 “아이들이 좋아해서 후식으로 챙겨주던 젤리 가격이 갑자기 30%나 올라서 사흘에 한 번은 챙겨주려고 했던 젤리 간식을 줄여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전체 소득에서 식사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클 수밖에 없는 저소득층에게 식품 물가 상승은 치명적이다. 서울 강동구의 무료 급식소에서 1년째 식사를 해결하는 홍모(75)씨는 “끼니때가 돌아오는 게 겁이 난다”고 했다. 그는 보통 점심은 급식소의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저녁은 도시락에서 먹다 남겨둔 밥과 김치, 계란으로 해결했다. 홍씨는 “계란이나 김치 모두 너무 비싸져 반찬 없이 그냥 밥을 먹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에서 사는 이모(62)씨는 최근 모든 끼니를 집에서 라면으로 때우고 있다고 했다. 이씨가 자주 가던 집의 소고기 콩나물 국밥은 최근 4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이씨는 “아침에 라면을 끓여 먹고 국물을 아꼈다가 점심에 그 국물에 밥을 말아 먹기도 한다”고 했다. 인근 주민 김미선(62)씨도 “쪽방 상담소에서 주는 김치를 받아 돼지고기 등을 넣고 찌개를 끓여 먹었는데, 이제는 고기 살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무료 도시락을 아침·점심으로 나눠 먹는다”고 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물가가 당장 잡힐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국가·지자체 차원에서 취약 계층이 최소한의 식사는 할 수 있도록 살피고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