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 사는 김모(26)씨는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한 뒤 매일 ‘한 번만 만나 달라’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그를 피하기 위해 평소와 다른 길로 출퇴근하자 집 앞에 식칼을 들고 찾아온 남자는 “헤어지면 죽어버릴 거다”며 협박했다.

젊은 여성들은 길거리뿐 아니라 연인 등 친밀한 대상에게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불안감에도 시달린다. 경찰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지난 2016년 9364건에서 2020년 1만8945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스토킹 범죄도 늘었다. 2018년 2772건이던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2021년 1만4509건으로 무려 423% 증가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여성들이 실제로 두려워하는 것은 불특정인이 아니라 잘 아는 사람에 의한 폭력”이라며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같은 범죄의 피해자는 여성이 훨씬 많다”고 했다. 경찰청이 2020년 7~8월 데이트 폭력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 결과 피해자 65.6%는 여성인 것으로 집계됐다.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 이후 발생한 스토킹 범죄에서 가해자는 남성이 2472명(81.3%), 피해자는 여성이 2741명(80.8%)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폭력은 대부분 이별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21년 언론에 보도된 연인 살해 사건을 분석한 결과, 범행 이유는 ‘이혼ㆍ결별을 요구하거나 재결합ㆍ만남을 거부해서’(26.7%)가 가장 많았다.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범죄분석조사연구실장은 “데이트 폭력 가해자들은 보통 상대방에 대한 통제력과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심리가 있는데, 상대가 먼저 이별을 통보하면 자신이 더 이상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된 데 대해 분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신의 연애기를 무용담처럼 자랑하는 과거 남성들의 마초적 문화가 스토킹 범죄와 데이트 폭력을 용인해 왔다”며 “여성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등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