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여전한 취업 남녀차별’ 721개 기업 인사담당 설문

남녀고용평등법은 채용 시 성별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취업 전선에서는 이 같은 차별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KB국민·신한은행이 2015년과 2016년 신입사원 채용 당시 남성 지원자의 점수를 올려 여성 지원자를 떨어뜨린 일이 유죄 판결까지 받았지만, 다른 기업들에서도 ‘관행’이란 이름으로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었다.

조선일보와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달 12~15일 721개 기업 인사·채용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55.1%)이 ‘채용 시 선호하는 성별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73.6%는 ‘남성을 선호한다’고 했다. 지난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점수는 낮았지만 성별 때문에 최종 합격을 시켰다는 담당자도 12.7%나 됐다.

실제로 대기업 계열 중공업 회사의 한 인사·채용 담당자는 “회사가 남자를 더 채용하기 위해 점수를 올려주는 관행이 있어왔다”고 했다. 서류 심사 단계에서 학점, 영어 성적, 인턴 경험 등 정량 점수로만 평가하면 합격자의 남녀 비율이 1대9이지만, 이 회사는 남자들의 입사지원서 점수를 올려 합격자 비율을 5대5로 조정해 면접 단계에 올린다는 것이다. 두 차례 면접을 거치고 나면 최종 합격자의 남녀 비율은 7대3으로 역전된다. 이 담당자는 “최종 면접에서 임원들은 ‘남자는 성적이 나빠도 태도가 좋다’ 같은 이유로 점수를 올려준다”고 했다.

반면 여성들은 최종 합격 여부를 결정짓는 면접에서 성 차별적 질문을 받는다. 조선일보와 사람인이 지난달 18~21일 남녀 구직자 119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여성 응답자의 28.7%가 면접에서 “성별을 의식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남성 응답자(14.5%)보다 두 배 높은 수치로, ‘출산 및 자녀 계획’(63.1%)과 ‘향후 결혼 계획’(62.6%) 질문이 가장 많았다.

대학원생 조모(26)씨는 최근 치른 집단 면접에서 결혼을 할 것인지, 술을 잘 마시는지, 운전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받았다. 같이 면접을 본 남성은 받지 않은 질문이다. 조씨는 “결혼 계획과 음주, 운전 실력이 업무에 중요한 사항이라면 모든 면접자한테 물어봐야지 왜 여성인 나한테만 물어보는지 이해가 안 갔다”고 했다.

남초 현상 두드러진 기계·철강·정유·화학업계의 경우는 더하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김모(27)씨는 지난해 국내 한 석유화학 대기업에 면접을 보러 갔다가 “여자인데 왜 서비스나 마케팅 직무를 지원하지 않았냐” “여자인데 엔지니어링 업무를 할 수 있겠냐” “사내에 여자 화장실이 적은데 적응할 수 있겠나” 같은 질문을 15분 동안 받았다고 했다.

채용 시 직무 능력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알려진 전문 직종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여성 레지던트를 기피한다. 종합병원의 한 전공의는 “인턴 동기 중 수석이 여자였는데 정형외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며 “정형외과는 여자를 안 받는 것으로 유명한데, 여자란 이유로 떨어뜨렸다고 증명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성적이 최상위권이어도 ‘일하는 방식이 우리 의국(醫局)과 안 맞는다’고 평가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했다.

‘사람인’ 조사에서 채용 시 남성을 선호한다는 기업 중 70.2%(복수 응답)는 “남성에게 적합한 직무가 더 많다”는 것을 이유로 꼽았다. 또 “야근·출장 등을 시키기가 더 수월하다”(25.7%), “육아휴직 등으로 업무 단절이 없다”(18.2%)도 선호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업이 남성 선호 이유로 꼽은 것들은 대부분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고용차별에 대한 처벌도 느슨하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기소된 하나은행 법인은 지난 3월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함영주 하나은행 부회장은 인사부에 남성 합격자 비중을 늘리라고 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재판부는 “하나은행의 남녀 차별적 채용 방식이 적어도 10년 이상 관행적으로 시행됐다고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여성에 쏟아지는 ‘외모압박’

양모(27)씨는 대학 졸업 1년 만인 지난해 공기업에 합격했다. 도전한 지 4번째만이었다. 가장 신경 쓴 단계는 면접이었다. 번번이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세 번째 면접부터 10만원이나 주고 ‘면접용 메이크업’을 받은 건 그 때문이다. 학교 앞 면접 전문 메이크업 숍에서 화장 비용 10만원에 구두와 정장 사는데 25만원, 사진 촬영 6만원 등 50만원 넘게 썼다. 양씨는 “취준생에겐 부담스러운 금액이라 4번 만에 합격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취업 전선에 나선 여성들은 외모에 대한 압박을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 결과, ‘직업적 성공을 위해 외모가 중요하다’고 응답한 20대 여성은 77.4%, 20대 남성은 61.6%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2020년)에서도 청년 세대(19~34세) 중 ‘여성은 화장 등 외모 관리 요구 압박이 심하다’는 데 여성은 73.0%, 남성은 33.6%가 동의했다.

지난해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여성 김모(26)씨는 “체력이 중요한 경찰도 최종 면접에서는 ‘얼굴 보고 뽑는다’는 말이 있어 면접 볼 때 머리를 풀지 묶을지, 치마를 입을지 바지를 입을지 고민할 게 너무 많았다”고 했다. 실제로 중소 규모 제조업체 과장급 직원은 “임원들을 따라 면접에 들어갔는데, 사장이 나오면서 ‘마지막 지원자가 제일 이쁘더라’고 하니 다른 임원들이 ‘어차피 스펙이 비슷하면 이쁜 게 낫다’면서 해당 지원자를 뽑았다”고 말했다.

카페 알바에도 여성은 외모가 중요했다. 대학생 강모(26) 씨는 “알바 공고에 ‘용모단정’이란 조건을 내걸었는데, 면접 전에 ‘사진부터 보내라’고 연락이 왔더라”고 했다. 취업을 위해 성형 시술까지 하는 여성들도 많다. 서울 강남 한 성형외과 원장은 “취업 때문에 성형 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배 이상 많다”면서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보톡스, 필러 시술을 많이 한다”고 했다.

이재은 고려대 여학생 진로 담당 외래교수는 “여성 구직자에게는 직무능력뿐 아니라 외모에 대한 기대도 있어 다이어트, 운동, 외모 관리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고 했다.

팩트체크 : 여성취업률 정말 높은가

일부 남성은 20대 여성 취업률이 남성보다 높기 때문에 더 이상 고용 현장에서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럴까.

2021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5~29세 고용률(취업한 인구 비율)은 여성이 70.9%로 남성(66.4%)보다 4.5%포인트 높다. 남성들은 군대를 다녀와 여성보다 취업 전선에 늦게 뛰어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30대 이후다. 20대 후반 이후 여성 고용률은 뚝 떨어져 2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높다. 남성 고용률은 30~34세 85.7%, 35~39세 90.1%로 계속 증가하는 반면, 여성 고용률은 65.7%, 57.5%로 급락한다. 결혼해 아이 낳고 육아를 하면서 일을 그만두는 ‘경력 단절’을 겪기 때문이다.

고용의 질도 남성보다 좋지 않다. 전 연령대에서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남성보다 높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5~29세도 여성(31.9%) 비정규직 비율은 남성(29.2%)보다 높다. 이후로도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26.6%(30~34세), 31.1%(35~39세), 39.9%(40~44세)로 크게 높아지는 반면, 남성은 20.1%(30~34세), 18.4%(35~39세), 19.0%(40~44세)로 줄어든다.

월평균 임금도 여성이 남성보다 적다. 25~29세 때 19만원(남 248만·여 229만원) 적고, 이후엔 격차가 점점 커져 50~54세에 이르면 179만원(남 404만·여 225만원)까지 벌어진다. 결국 20대 여성 고용률은 남성보다 높지만 여성들은 남성보다 계약직 서비스업 등 월급이 적고 불안정한 질 낮은 일자리에 더 많이 진출하고, 출산과 양육으로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두는 경우가 속출하는 것이다. 지난해 경력 단절 여성은 144만8000명에 달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난주 연구위원은 “여성들은 경력단절을 겪은 후엔 기존 직장보다 월급도 적고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취업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여성의 전생애주기 고용 실태는 우리 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