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휠체어를 탄 장애인 6명과 이들과 함께 온 30여 명이 목에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권을 보장하라’는 피켓을 건 채 서 있었다. 작년 12월 3일 5호선 여의도역에서 시작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다. 열차가 도착하자 휠체어 탄 사람들이 한 명씩 지하철에 천천히 올라탔다. 객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주고 또 다음 사람이 올라타면서 차량 출발이 10분쯤 늦어졌다. 일부 시민 사이에서 “아, 또 이러는 거냐”는 탄식이 나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들도 여러분과 같이 이동하고 싶다. 우리도 집에서 나와서 교육받고 싶고 여러분과 함께 일할 기회를 갖고 싶어서 지하철을 탔다”고 했다.

'이동권 예산확보'를 요구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3호선에서 25차 출근길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이날은 전장연의 25번째 출근길 지하철 시위였다. 시민들이 바쁜 걸음을 옮기는 출근 시간에 지하철 운행을 늦추는 시위가 단기간 집중되면서 이 시위를 두고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고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갈등까지 빚어지고 있다. 소셜미디어(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히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몰려 혐오 섞인 악플을 달며 비난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5일 한 뮤지컬 배우가 SNS에 이 시위와 관련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는 건강하지 못하다. 제발 멈춰”라고 썼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여기에 대해서도 “옳은 말 했는데 왜 사과하느냐”는 댓글이 달리면서 논쟁이 확산되는 중이다.

전장연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시위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이명박·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서울 시내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 측에 ‘장애인 권리 예산’을 보장해달라고도 요구한다. 현재 지자체가 일부 지원하고 있는 장애인 평생 교육 시설의 운영비를 국비로 지원하고,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장애인들의 탈(脫)시설을 돕기 위한 예산 24억원을 올해 788억원까지 늘려달라는 것이다.

장애인 단체에 무릎 꿇고 사과한 김예지 의원 - 시각 장애가 있는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28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 현장에 참석해 최근 논란과 관련,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무릎을 꿇고 있다. /뉴스1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전장연 시위가 25번 벌어지는 동안 매번 짧게는 10여분, 길게는 1시간까지 지하철 운행이 지연됐다. 그 바람에 직장이나 약속에 늦은 시민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게 정당하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 장애인 시위로 지하철에 발이 묶여 결국 택시를 탔다는 직장인 윤모(31)씨는 “매일 아침 4호선 수유역에서 3호선 신사역으로 출근하면서 전장연 시위로 늦은 게 10번 가까이 된다”고 했다. 출근 전에 전장연이 집회를 하는지를 확인하면서 출근을 더 서두르는 직장인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달 9일 오전 이들의 시위로 출발이 지연된 지하철 안에서 “할머니 임종을 지키러 가야 한다”며 소리치는 시민에게 “버스 타고 가세요”라고 답하는 전장연 관계자의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현장에서 바로 사과했다고 한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미 서울 시내 지하철 326개 역사 중 305곳(93.6%)에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다며 전장연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반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전장연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전장연 대표 계좌로 후원금을 보낸 내역을 SNS에 공유하며 응원한다는 뜻을 알리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27일 전장연에 1만원을 후원했다는 직장인 손모(39)씨는 “비장애인들이 겪는 불편은 잠시지만 장애인들이 겪어왔던 불편은 평생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직장인들이 아침마다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 잘 알고 있다. 욕 먹으면서까지 시위에 나서는 우리의 마음은 편하겠느냐”면서도 “홍남기 부총리 집 앞에 가서도 수차례 시위를 해보고 복지부⋅교육부 다 다녀봤지만 안 된다는 말만 돌아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