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취업 준비생 권모(29)씨는 최근 1년 새 기업 6곳 신입 사원 공채에 지원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이 중 네 차례는 ‘AI(인공지능) 역량검사’ 단계에서 떨어졌다. AI 역량검사(이하 ‘AI 면접’)는 지원자가 카메라가 달린 컴퓨터 등을 앞에 두고 AI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여러 질문에 답변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을 AI가 평가하는 방식이다. 기업 채용은 크게 서류전형, 실무평가, 임원 면접 등의 단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AI 면접은 보통 서류전형과 실무평가 사이에 치른다. 권씨는 AI 면접에서 잇따라 낙방한 뒤 지난달 중순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학원에서 AI 면접 맞춤형 수업을 등록했다고 한다. 2일간 총 4시간 수업에 59만원이었다. 그는 “자기소개서에 채워넣을 스펙 쌓기도 벅찬데, 이젠 AI 면접관에게 잘 보이는 방법까지 익혀야 하니 더 힘들다”고 했다.

AI 면접은 2018년 공기업 등에서 채용 비리가 잇따라 터지자 그 대안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나 면접 대신 객관적으로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도 있었다. 현재 신세계그룹, 신한은행, GS칼텍스, 한국수력원자력,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전국 600곳 안팎 기업이 이 평가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들은 AI 면접이 이제 또 다른 스펙 쌓기 경쟁으로 변질됐다고 말한다. 관련 학원까지 등장해 면접 통과를 위해 돈을 내고 학원에 다니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고가(高價) 강의도 등장했다. 3~4시간짜리 인터넷 강의가 6만원 안팎인 경우도 있고, 3시간에 50만원을 받고 컨설팅을 해주는 학원도 생겼다. 서울의 한 학원은 AI 면접 강의가 1회당 30만원으로, 1회당 20만원인 일반 면접 강의보다 더 비쌌다. 역대 주요 기업의 AI 면접 기출 문제도 온라인에서 수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AI 면접에서 자주 나오는 기본 질문은 “이 회사에 지원한 동기가 무엇이냐” “본인의 성격의 장단점을 말하라” 등이다. 30초쯤 답변 준비 시간을 주고 20~60초 동안 대답을 한다. “군대식 문화를 강요하는 선배에게 어떻게 말하겠는가” “겸손한 태도를 보였는데 막상 남들이 본인의 성과를 알아주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상황별 질문도 나온다고 한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AI 면접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선 사실 여부가 불명확한 ‘꿀팁’까지 돌고 있다. “한쪽 입꼬리만 올리면 AI가 ‘경멸하는 표정’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양쪽 입꼬리를 모두 올리며 웃어야 한다” “음성은 소프라노 같은 고음이 좋다” “답변 내용이 논리적이지 않아도 뻔뻔하게 말하면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AI 면접 개발업체 관계자는 “시중에 있는 AI 면접 대비 학원들 대다수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취업 준비생들을 위해 홈페이지에 무료로 AI 면접 체험 프로그램과 AI 면접 백서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AI 면접이 인재 선별에 별 효과가 없어 취업 준비생들에게 괜한 부담만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AI 면접을 거쳐 한 중견기업에 입사했다는 전모(29)씨는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 순발력을 보는 질문을 받았는데, 정작 회사에서 하는 일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19년 AI 면접을 도입했다 작년부터 폐지했다. 공사 관계자는 “시행해보니 기대보다 변별력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다만 AI 면접 개발업체 관계자는 “AI 면접을 활용하는 기업들은 AI 면접으로 선발한 인원들의 적응도와 성과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어, 매년 재계약율이 93%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