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에 참전한 뒤 고엽제 후유증을 겪고 있는 국가유공자 박장원(78)씨는 재작년 10월 보훈 등급이 7급에서 6급으로 올랐다. 2019년 폐암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나빠진 점이 반영됐다. 보훈 등급이 오르면 보상금이 늘어난다. 그런데 그는 작년 8월 보훈처에 “내 보훈 등급을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는 원래 보훈급여로 나오는 보상금 월 50만원과 기초생활보장 제도에 따른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50여 만원을 받아 생활해왔다. 보훈 등급이 올라 보상금이 월 93만원으로 늘면 생활이 좀 더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늘어난 보상금이 소득으로 잡히는 바람에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잃게 돼 오히려 손해였다는 것이다. 박씨는 “보훈 등급이 오르면서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던 급여 월 50만원이 없어졌고, 의료 급여도 끊겨 집 근처 병원 대신 교통비를 들여가며 보훈병원으로 가야 했다”며 “월 10만원에 달하던 수도·전기 요금과 주민세 등 공과금 감면 혜택 역시 사라져 전체적으로 전보다 오히려 월 30만원 가까이 손해를 보게 돼 보훈 등급을 다시 한 단계 낮췄다”고 했다.

기초생활보장 제도는 연령·가구원 수 등을 감안해 소득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등으로 기초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그런데 보훈급여 중 생활조정수당과 참전명예수당, 고엽제수당, 독립유공자 손자녀 생활지원금을 제외하고 부상자 등에게 지급하는 보상금 등 나머지 항목은 모두 소득으로 간주한다. 이 기준에 따라 박씨도 보훈급여인 보상금이 늘어나는 바람에 기초생활보장 제도로 지원받는 돈이 줄어드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처럼 형편이 어려워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을 받아야 하는 보훈 대상자들이 보훈급여와 기초생활보장급여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6·25 참전 유공자나 순직 공무원·상이군경 등 국가 유공자, 베트남전 고엽제 후유증 환자 등은 보훈 대상자로 지정돼 보훈급여를 받는데, 보훈 대상자는 지난 9월 기준 전국 59만2000여 명에 달한다. 이 중 약 2만8000명이 기초생활수급자다.

보훈급여 탓에 기초생활수급자로서의 혜택을 제대로 못 받는다며 보훈 자격을 포기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보훈처는 보훈 유공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2020년 5월부터 기초생활수급을 받기 위해 보훈급여를 전액 또는 일부 포기할 수 있는 제도를 시행했는데, 작년 9월까지 약 1년간 132명이 “내 보훈급여를 줄여달라”고 신청했다. 7급 전상 군경 하모씨의 경우 보상금 49만6000원에 고령수당 9만7000원, 생활조정수당 28만3000원 등을 받고 있었다. 보상금에 고령수당을 더하자 기초생활수급 소득 기준을 넘어버린 하씨는 결국 보상금 전부를 포기하고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선택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국회에서도 보훈급여를 소득에 넣지 않는 법안이 나왔지만 정부 반대에 부딪힌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고령자나 장애인 등도 모두 소득이 늘면 기초생활보장급여를 줄이는데 보훈급여만 예외를 두는 건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오는 2월부터 80세 이상 생계 곤란 참전 유공자에게 새로 생계지원금 10만원이 지급되는데 이 돈도 소득으로 잡히게 돼 있어 ‘양자택일 논란’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용환 국가유공자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는 “국가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기 위해 보훈의 가치를 평가해달라는 건데, 보훈급여를 단순 소득으로 보는 건 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