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2시,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상가 앞에서 인근 주민 5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대부분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 이상 주민들이었다. 이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34년간 상가 1층을 지켰던 은행이 내년 2월 폐점하기 때문이다. 은행 본점은 이곳을 ‘무인형 스마트 점포’로 바꾸기로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금융서비스가 급격히 확산하면서 시중은행의 점포 폐쇄가 잇따르는 가운데 13일 오후 서울 한 은행점포에 통합 이전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2021.12.13. /뉴시스

주민들은 “무분별한 은행 폐점, 해도 해도 너무한다” “노인배제 주민불편, 지점폐쇄 반대한다”고 적은 종이를 손에 들고 구호를 외쳤다. 시위에 나선 김종현(65)씨는 “노인들은 간단한 스마트폰 조작도 쉽지 않은데, 한 달에 두세 번씩 찾아야 하는 은행에 기계만 들어선다니 막막한 심정”이라며 “나 하나 거리에 나온다고 은행의 결정을 바꿀 순 없겠지만 이런 목소리라도 알리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지점을 속속 폐쇄하면서 노인들의 금융 소외 현상이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국 은행들은 올해 222곳의 점포를 한꺼번에 폐쇄하기로 했다. 지난 5년간 연평균 폐쇄점포(175곳)보다 27% 많은 수치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스마트폰 앱으로 송금·대출 등 은행 서비스를 처리하는 데다,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비대면 흐름이 가속화했기 때문이다.

서울 월계동 주민들의 ‘은행 폐점 반대’ 시위는, 은행이 비대면 전환과 수익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소외되는 노인들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민 권성회(86)씨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잘못 만졌다가 보이스피싱 사기라도 당할까봐 간단한 입출금도 항상 은행을 찾는데 일방적인 폐점 결정을 해 서운하다”며 “다 노인들이라고 돈이 안 되니 ‘달면 삼키고 쓰면 뱉겠다’는 식이 아니냐”고 했다. 스마트폰족(族)인 김성은(34)씨도 시위에 동참했다. 그는 “어르신들의 거동이 불편하고, 기계 이용이 쉽지 않다는 점을 떠나서라도 은행이 주민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이처럼 일방적인 결정을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며 “과연 사람을 없애는 게 미래지향적인지, 디지털화가 무조건 정답인지 은행에 묻고 싶다”고 했다. 해당 은행 관계자는 “월계동 지점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보니 외부 고객 유입이 적어 폐점을 결정했다”며 “고객들의 불만과 우려를 반영해 무인 점포에 안내 직원을 1명 상주시키기로 하는 등 대책을 마련한 상태”라고 했다.

올 하반기 기준 전국 은행 점포 수는 6183곳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달 “점포 축소에 따른 금융 소외 현상을 방치할 경우, 고령자 등 일부 이용자들이 금융 서비스에서 탈락해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 줄폐점’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금융기관 입장에선 시대 흐름에 맞춰 업무를 비대면화하는 것이 불가피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며 “노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엔 대면 점포를 유지하는 등 사회 약자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추는 상생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기관은 전산화가 쉽고 효율적인 특성상 디지털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며 “한국은 지점이 하나도 없는 카카오뱅크가 시가총액 상위권을 차지할 만큼 스마트 뱅킹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디지털 소외 계층 배려 때문에 이런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면 성장이 더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