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에게 추석 선물이 배달됐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명절에는 하늘나라로 떠난 아들이 더 생각나요. 옆집에서 하하 호호 웃으며 손님 맞이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저는 명절에 올 아들이 없으니까….”

긴 추석 연휴로 들뜬 분위기 속에서 10년 전 아들을 떠나보낸 장부순(78)씨가 말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밤낮으로 창업 준비를 하던 장씨의 아들 이종훈씨(당시 33세)는 2011년 1월 뇌출혈로 쓰러지고 나서 뇌사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각막·신장 등 자신의 장기를 다른 환자들에게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장씨는 “여전히 추석이 되면 명절 음식을 맛있게 먹던 아들이 그립다”고 했다. 장씨 같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은 명절이 되면 떠나간 가족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느낀다고 말한다. 지난해부터는 코로나 우려로 친인척들과 모이기도 어려워 그리움은 온전히 유가족들의 몫이 됐다.

지난 10일 기증인들에 대한 이들의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는 선물이 배달됐다. 비타민 등의 영양제·단팥죽·과자·마스크 등이 가득 들어 있어 있는 추석 선물 상자였다.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300가정을 위해 기부플랫폼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모금한 3000여명과 CJ제일제당·샘표·광동제약·롯데제과·초록마을 등이 마련한 것이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꾸린 상자에는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들이 보낸 편지도 있었다.

유가족들은 “누군가 진짜로 죽는 때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때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기증인을 기억해주는 이들이 있어 하늘에서도 외롭지 않은 추석을 보낼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2010년 7월 당시 4살이었던 아들 희찬군을 떠나보내며 장기 기증을 결정한 왕홍주(55)씨도 이 선물 상자를 받았다. 왕씨는 “아들이 떠나고 난 후 장기 기증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면서 “이제는 많은 분이 희찬이의 나눔을 기억해주고 이렇게 마음을 전해주는 덕분에 생명을 살렸다는 자긍심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이번 추석 선물을 준비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지난 2013년부터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인 ‘도너패밀리’를 운영하고 있다. 기증인을 예우하는 프로그램과 유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 프로그램,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를 위한 장학회 등을 운영한다.

지난 10일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에게 추석 선물이 배달됐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