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던 추모(37)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원래 신촌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건물주와 재계약을 하지 못해, 작년 초 이곳으로 옮겨 새로 개업한 지 불과 반년 만이었다. 개업 과정에서 8000만원 이상의 빚을 진 그는 재기(再起)를 노렸지만 곧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작년 4월부터 1~2주씩 영업제한 조치가 내려졌고, 이태원 클럽발(發) 집단감염이 발생한 5월부터는 ‘무기한 영업 정지’가 이어졌다. 그의 가게 문에는 ‘집합금지 업소’ 딱지가 붙었다.

14일 오후 대전시청 앞에서 상복을 입은 한국노래문화업중앙회 대전시협회 회원들이 집회를 열고 방역수칙 조정과 손실보상금 지급을 촉구하고 있다. 대전시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3단계로 하향 조정함에 따라 노래방은 오후 10시까지 운영하게 된다. /신현종 기자

추씨는 업종 변경을 꾸준히 알아보며,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로 뛰어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가게 문을 열지 못하는 새 빚은 꾸준히 늘었다. 인근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황모(40)씨는 “같이 장사하는 처지라 나한테까지 부탁하진 않았지만, 추씨가 주변에 돈 빌리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어느 날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집을 나선 추씨는 강화도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황씨는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술 한 잔 하자’고 약속했었는데, 바로 만나서 위로를 하지 못한 게 아직까지도 너무나 미안하다”고 했다.

경기도 안양시 평촌역 근처에서 주점을 운영하던 A(31)씨는 지난 4월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A씨의 지인들은 “참 밝고, 열심히 살던 젊은 친구”라고 그를 기억했다. 빨리 돈을 모아 여자 친구와 결혼하겠다는 꿈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월세가 비싼 평촌역 번화가에서 영업 제한이 1년 넘게 이어지자, A씨는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평범하게 살기가 정말 어렵네요”라고 했다고 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지난 4월, A씨는 예비 신부와 헤어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 지인인 자영업자 김보경(32)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게 남의 일 같지 않고 너무나 애통하다”고 했다. 그는 “정부는 손실 보상해준답시고 월세도 안 되는 돈 몇 푼 쥐어주는데 그게 정말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며 “고통받는 자영업자들이 왜 항상 징징대는 것처럼 비치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원룸 빼서 직원 월급 주고 지난 7일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마포 맥줏집 사장, 지난 12일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메모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된 전남 여수의 치킨집 사장.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두 자영업자의 죽음을 계기로 지난 12일 밤부터 전국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 제보를 접수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12일 밤부터 14일 오전까지 접수한 결과, 코로나가 시작된 작년부터 전국에서 자영업자 20여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소위 ‘K방역’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다. 접수 사례의 절반은 유흥음식업주였다.

최원봉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사무국장은 “대전, 경남, 강원 등 전국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업주들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며 “서울의 유흥업소들은 코로나 이후 500일 가까이 영업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문 닫으라 해서 닫고는 있지만 이자·월세는 꼬박꼬박 나가고, 이렇게 손실을 감수해서 방역이라도 성공하면 약간의 보람이라도 있겠는데 확진자는 계속 나오니 기가 차는 상황”이라고 했다.

14일 오전 0시 40분쯤 자영업자 850여 명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저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짤막한 글이 올라왔다. 그러자 “나쁜 생각하지 마라” “저도 내일이 두렵지만 살아보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지만 희망을 가져보자”는 다른 자영업자들의 위로가 잇따랐다. 조지현 비대위 공동대표는 “자영업자들이 모인 채팅방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 ‘마지막 선택을 하려 한다’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며 “이제는 ‘어렵다’ ‘힘들다’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살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