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13일 서울시청 브리핑실에서 '서울시 바로세우기'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TV조선

오세훈 서울시장이 13일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ATM(현금인출기)으로 전락했다”고 한 것은 박원순 전 시장 재임 당시 이뤄진 시민사회단체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과 수술을 예고한 것이다. ‘박원순 지우기’ 아니냐는 서울시의회 등의 비판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박 전 시장 재임 10년 동안 시민사회와 시민단체가 관여한 사업에 지급된 보조금이나 위탁금 규모가 1조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1조원이 모두 낭비됐다는 건 아니지만, 예산이 적정하게 쓰였는지 살펴볼 계획”이라고 했다.

오 시장은 지난 4월 취임 이후 박 전 시장이 만들어놓은 ‘민간 위탁 사업’ 구조에 대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민간 위탁 사업은 서울시가 세금으로 예산을 투입하되, 사업 운영은 심사나 경쟁 입찰을 거쳐 민간단체에 맡기는 것을 말한다. 박 전 시장은 ‘협치’ ‘시민 참여’ 등 명목으로 민간 위탁 사업을 대거 추진했다. 시민단체 출신을 서울시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해 사업 관리를 맡기는 일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각종 부작용이 생겼다는 게 오세훈 서울시의 판단이다.

서울시청 전경./장련성 기자

이날 오 시장은 ‘마을공동체 사업’을 대표적 문제 사례로 들며 “인건비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고 했다. 서울시는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 생태계를 만들겠다며 2012년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를 만들고, 지난해까지 자치구 24곳에 중간 지원 조직이라며 ‘마을자치센터’도 만들었다. 김소양 서울시의원과 서울시의회 예산정책담당관에 따르면 작년의 경우 모든 마을센터 연간 예산은 113억원이었는데, 이 중 인건비가 절반인 약 56억원(49.6%)에 달했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이 마을센터와 마을활력소 조성 및 운영, 마을생태계 사업 등에 지난 10년간 총 1300억원의 서울시 예산이 투입됐다.

각 마을센터 운영은 민간단체가 했다. 종합지원센터의 경우 박 전 시장 측근으로 불린 인사가 설립을 주도한 ‘사단법인 마을’이란 곳이 맡았다. 이 센터에서 2016~2018년 4월까지 센터장을 지낸 A씨는 2018년 5월부터는 아예 마을 사업을 담당하는 시 과장급 공무원으로 채용돼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서울시 예산을 받아서 각종 활동을 했던 사람이, 자기가 일하던 단체에 예산을 배정·관리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오 시장은 “자신이 몸담았던 시민단체에 재정 지원을 하는 그들만의 생태계를 만들었다”며 “중간 지원 조직을 각 자치구에 설치하고 또 다른 시민단체에 위탁한 것도 ‘시민단체의 피라미드’ ‘시민단체형 다단계’”라고 했다.

서울시가 감사·조사 중인 박원순 전 시장 주요 사업

일부 청년 사업도 비슷한 구조였다. 오 시장은 “시민단체 출신이 서울시의 해당 사업 부서장으로 와서 특정 시민단체를 지원했고, 이 단체들이 또다시 자금 창구가 돼 또 다른 시민단체에 연구 용역을 집중 발주하는 구조를 정착시켰다”고 주장했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민간에 맡기는 바람에 각종 인건비 등 일종의 ‘통행세’로 아까운 세금을 썼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사회주택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사회주택은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등이 공급하는 임대주택인데,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아닌 협동조합 등이 이 사업을 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 사업에 7년간 총 2014억원을 투자했다. 역량이 부족하고 영세한 업체가 임대주택 사업을 하다 보니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업체가 시에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랐다고 서울시 관계자는 전했다.

박 전 시장은 서울시가 마련한 기금을 소규모 사회적 기업과 시민단체 등에 저리로 지원하는 사회투자기금도 특정 단체에 약 40억원을 주고 기금 운용을 맡겼다. 하지만 서울시가 공공기관을 통해 운영했다면 세금을 충분히 아낄 수 있었다고 서울시 관계자는 말했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이 기금에 총 907억원을 출자했다.

서울시 감사위원회가 현재 감사나 조사를 진행하는 사업은 총 27건에 이른다. 한강 노들섬, 사회주택, 베란다형 태양광 보급 등이다. 오 시장은 “세금을 함부로 사용한 사례를 바로잡을 뿐”이라고 했지만, 본격적인 사업 재정비에 나설 경우 관련 단체들과의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