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5시 30분, 경기도 포천시의 한 농장. 애호박 수확과 잡초 제거 등 일과를 마친 캄보디아 여성 3명은 기숙사 대신 바로 옆 최모(63)씨 농장으로 향했다. 본업(本業)을 마치고 옆 농장에서 ‘야간 알바’를 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2시간 더 일하고, 현금 2만원씩을 받았다. 코로나 이전 외국인 노동자 시급은 9000원 정도였는데, 1년 사이 1만원으로 올랐다.

지난 19일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의 한 농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들은 계약된 농장에서 낮시간 일하고 6시 이후에 다른 농장으로 이동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농장 관계자는 농장 일손 부족으로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농장 운영이 어렵다고 말한다./이태경기자

폭 6m, 길이 100여m 애호박 비닐하우스 16동(棟)을 운영하는 최씨는 코로나 이전엔 베트남 국적 노동자 6명을 고용해 농사를 지었다. 현재는 1명뿐이다. 이 한 명조차 불법 체류자다. 그는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일하고 월급 250만원을 받는다. 최씨는 “지금 한창 수확철인데 도저히 둘이선 일이 되질 않아, 옆 농장에서 매일 ‘알바’를 3~4명씩 빌려 야간 작업을 한다”며 “지금 수확철인데 불법이고 뭐고 돈을 더 줘서라도 무조건 외국인을 붙잡아야 할 판”이라고 했다. 그는 “법무부에서 불법 체류자 단속이라도 나오면 나는 길바닥에 그냥 누워버리겠다”고 했다.

쑥갓 농사를 지었다는 최씨 옆 농장엔 잡초만 무성했다. 그는 “일할 사람이 없으니까, 농장주가 농약을 쳐서 쑥갓을 죽여놔 지금은 잡초뿐”이라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저게 바로 내 미래”라고 했다.

코로나 장기화로 신규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크게 줄면서 농가와 제조 현장 곳곳에서 ‘인력 쟁탈전’이 벌어져 외국인 노동자 ‘몸값’이 뛰고, 농가 입장에선 불법 체류자들도 마다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남 영암군에서 대기업 협력업체로 선박 제조를 하고 있는 A업체는 코로나 이전 전체 작업자 100명 중 25명이 외국인 노동자였다. 하지만 현재 남은 외국인 노동자는 15명뿐이다. 최소 3년에서 최대 4년 10개월인 국내 취업 비자가 만료된 이들이 본국(本國)으로 돌아가거나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됐기 때문이다. 코로나 초기엔 선박 주문이 대거 취소됐지만 최근에는 발주(發注)가 빠르게 늘고 있다. A 업체 관계자는 “마음 같아선 불법 체류자라도 다 데려다 쓰고 싶지만 원청 업체가 대기업이라 적발되면 계약이 해지될 수 있어 속이 탄다”고 했다.

비전문 취업비자(E-9) 체류 외국인 노동자 수

내국인들이 꺼리는 이른바 ‘3D 업무’를 맡는 외국인 노동자의 몸값은 치솟고 있다. 영암 대불국가산업단지 일대에서 만난 중소기업인들은 “외국인 용접공 일당이 코로나 이전엔 한국인 근로자의 70% 수준이었는데 최근엔 90%까지 올랐다”며 “한국인 용접공 일당이 15만~16만원쯤 하는데, 요샌 외국인도 13만~14만원을 줘야 한다”고 했다. 공기(工期)를 맞추기 위해 주 60~65시간씩 일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건비 인상 요구도 잇따른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하는 영세업자들 사이에선 “하루빨리 외국인 노동자가 늘지 않으면 모두 굶어 죽을 지경”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이 생긴 건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기존에 있던 외국인 노동자들은 하나둘씩 근로 비자가 만료돼 본국으로 돌아가는 반면, 코로나로 인해 신규 입국은 제한됐기 때문이다. 실제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농업·제조업 등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받는 ‘E-9’ 비자를 소지한 국내 체류 인원은 2019년 27만6553명에서 올 7월 21만9570명으로 20% 넘게 줄었다. 외국 국적 한국 동포가 국내 취업 시 발급받는 ‘H-2’ 비자 체류자도 같은 기간 22만6322명에서 13만8960명으로 40% 가까이 줄었다. 정부가 농촌 인력난 해소를 위해 올 상반기 외국인 계절 근로자 5300명을 배정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실제 입국한 외국인은 배정 인원의 7.8%에 불과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외국인 노동자 구애(求愛)’에 나서고 있다. 외국인 노동 의존도가 큰 강원도는 올해 이들의 주거 여건 개선에 12억1100만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강원도 양구군의 한 농장에선 기숙사를 리모델링하고, 에어컨·오븐 같은 가전 제품까지 갖춰놨다. 철원군의 한 마을에선 주민들이 마을의 빈 건물을 정비해 내년 9월까지 식료품점⋅빨래방 등을 갖춘 ‘외국인 노동자 거주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선 외국인 노동자 부족 사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손성원 중소기업중앙회 외국인력지원부장은 “격리시설 마련 등 코로나 감염 예방 조치와 함께 외국인 노동자 입국 허가 확대를 서둘러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김규찬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거지 관리, 근로 환경 및 복지 시설 개선 등을 통해 기존 인원의 이탈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