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가 사는 청년주택 입주자 단톡방에 ‘와인 마시고 싶은데 와인 잔이 없다’는 글이 올라왔어요. 잔을 빌려 드렸더니, 나중에 고맙다며 밥이랑 찌개를 갖다주시더라고요. ‘이웃 좋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어요.”

이달 초 서울 성동구 용답동 통장이 된 이설해(왼쪽부터), 정혜린, 우현정씨가 지난 4일 함께 모여 ‘통장증’을 보여주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 4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서 만난 이설해(31)씨는 동네 통장(統長)에 지원한 이유를 설명하며 “나도 좋은 이웃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를 비롯한 30대 여성 3명은 지난 1일 용답동 ‘MZ세대’ 통장이 됐다. 이씨는 12통, 정혜린(35)씨는 13통, 우현정(39)씨는 15통 통장이다. 세 사람은 법무법인 직원과 방문 교사, 작은 커피숍 주인으로 일하는 서울의 평범한 1인 가구 청년이다.

임기가 2년인 통장은 지역 주민과 주민센터, 구청을 이어준다. 각종 전달 사항을 알리고, 동네에 문제나 민원이 있을 때 공무원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해결하기도 한다. 1년에 500만원 정도 수당을 받는데, 50~60대가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동구만 해도 통장 454명 평균 연령이 59.3세다.

이례적으로 MZ세대 통장이 등장한 것은 이 지역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30대 통장 3명이 사는 곳은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 부근으로, 원룸과 오피스텔 건물이 밀집한 곳이다. 성동구에 따르면 역 주변 2000여 가구 가운데 청년 1인 가구가 절반이 넘는다. 직장 가까운 곳을 찾아 이사를 많이 다녔다는 정씨는 “요즘 청년들은 한 곳에 정착하기 어려워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 낮다”며 “비슷한 처지의 또래 청년들과 고민을 나누는 언니나 누나 같은 통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들 세 사람은 “지금까지 살면서 동네 통장님을 제대로 만난 적이 거의 없었는데, 내가 통장이 될 줄은 몰랐다”며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이웃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 통장에 지원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작년 초 용답동에서 커피숍 운영을 시작한 우씨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손님이 뚝 끊긴 가게에 홀로 앉아 폐업해야 할지 고민이 깊었지만,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들이 찾아와 힘이 됐다고 했다. 그는 “아무 일도 아닌 듯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도시락과 영양제를 건네주며 위로해 주는데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며 “통장 모집 공고를 보고 ‘나도 봉사하면서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시행하는 1인 가구 정책을 주민들에게 더 많이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이사할 때 차량을 빌려주거나, 조건에 따라 부동산 계약서를 쓰면 중개 수수료를 지원해주기도 하는데 정작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 탓에 요즘은 저녁만 돼도 거리가 썰렁하다”며 “혼자 사는 1인 가구 등 이웃과 더 소통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