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달려든 진돗개에 놀라 달아나던 사람이 계단에서 굴러 중상을 입었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견주(犬主)일까, 발을 헛디딘 사람일까.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건은 지난 4월 11일 오후 10시 30분쯤, 서울 서대문구 백련산 산책로에서 벌어졌다.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고등학생 장모(15)군에게 대형 진돗개 한 마리가 갑자기 짖으며 달려든 것. 놀란 장군은 급하게 달아나다 산책로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두개골 골절, 뇌출혈, 이마 함몰, 치아 파절 등 중상을 입었다. 장군은 2주 넘게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뇌 수술을 받고, 현재는 퇴원해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아버지 장모(48)씨는 “견주가 관리를 소홀히 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줬다”며 지난달 27일 견주 A씨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7일 사건을 맡은 서울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인근 CC(폐쇄회로)TV와 관계자 진술을 확보하는 한편 견주에게 과실치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법리를 검토 중이다. 현행법상 주인 있는 개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면 견주 책임이다. 다만 개에게 물린 직접적 피해가 아닌, 피해자가 개로부터 받은 위협 때문에 다친 경우는 명시돼 있지 않다. 지난 1월 대전지법에선 목줄 없는 개를 피하다 자전거 전복 사고를 입은 피해자의 고소로, 견주가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고 당시 진돗개는 목줄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입마개 착용 여부는 진술이 엇갈리지만, 진돗개는 맹견이 아닌 일반견이라 설사 하지 않았다해도 견주의 관리 소홀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상황이다.

법무법인 더킴로펌 김형석 변호사는 “폭행을 피해 달아나다 다쳐도 상대방 책임을 묻듯, 개 위협으로 인한 피해도 견주 책임”이라며 “다만 고의적·직접적 피해가 아닌 만큼 책임이 상당 부분 제한될 수 있어 수사기관의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 신주운 정책팀장은 “특정 견종을 맹견으로 규정하는 대신 개체별로 기질을 평가해 견주 의무를 강화하는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