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 사는 최모(54)씨는 작년 2월 운영하던 피자집을 폐업하고 ‘전업주부 아빠’가 됐다. 정부세종청사의 5급 공무원인 아내를 대신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초등학교 5학년 딸의 학교·학원 일정에 맞춰 간식을 챙기고 숙제를 도와주며 하루를 보낸다. 빨래와 설거지, 청소도 그의 몫이다. 그는 “아내가 좋은 직장을 안정적으로 다니고 있어 새 직장을 알아보지 않고 전업주부가 됐다”고 했다.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가사(家事)·육아를 전담하는 ‘전업주부 아빠’가 늘고있다.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만 15세 이상 비경제활동 인구(미취업 상태로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 가운데 가사·육아를 전담하는 남성은 19만500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15만6000명, 지난해 16만3000명이었던 것이 올 들어 20만명에 육박한 것이다. 작년과 비교하면 20% 증가했다. 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실직하거나, 취업이 어려워 구직을 단념한 남성들의 숫자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고연봉 외벌이 아내’를 대신해 스스로 ‘전업주부’의 길을 택한 젊은 남성들도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사는 여성의 몫이라는 성(性) 관념이 바뀌었다”며 “젊은 부부들 사이에선 ‘육아로 한 명만 일해야 한다면 많이 버는 사람이 일한다’는 합리적 계산법이 통하는 것”이라고 했다.

‘주부 아빠’ 20만명 시대지만 이들의 가사·육아 여건은 녹록하지 않다. 우선 남성은 주부들끼리 활발하게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맘카페’부터 출입 금지다. 전국의 많은 맘카페가 ‘여성만’ 가입을 허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인터넷에는 ‘살림하는 형제들’ ‘빠블리’ 등 아빠들끼리 육아·살림 정보를 공유하는 아빠 카페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남성 전업주부에 대한 역차별도 존재한다. 같은 전업주부라도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 보험료를 달리 책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부 보험사에서 여성 주부는 가장 상해 위험도가 낮은 ‘1등급’으로 매기면서, 남성 주부는 ‘무직’으로 봐 보험료가 비싼 3등급으로 책정한다는 것이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남성 직업 분류 중에 전업주부가 없어 무직 처리하는 곳도 있고, 전업주부 등록이 가능해도 이를 증명하기 위해 배우자 수입 등 심사 과정을 거치는 곳도 있다”고 했다.

‘주부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낯설다. 전직 금융업 종사자인 김모(54)씨는 “간혹 설문 조사를 할 때 주부라고 하면 ‘무직이시군요’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했다. 3세·5세 아이를 키우는 권모(37)씨는 “유치원 모임에 아내 없이 혼자 갈 때마다, 혹시 우리 아이를 한부모 가정 아이로 보진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했다. 2년 차 주부 아빠 백인우(33)씨는 “여성 경력 단절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은데, 남자가 육아로 2년간 경력이 끊겼다는 것을 좋게 볼 회사가 없을 것 같아 재취업이 걱정”이라고 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월급만 받아서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주식이나 비트코인 투자에 의존하면서 취업 활동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전업주부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