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도로의 제한 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이 시행 이틀째인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각사거리에 안전속도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박상훈 기자

일요일인 18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영등포구를 가로지르는 노들로(路). 서울 동작구 한강대교 남단에서 택시를 타고 “노들로를 통해 시속 50㎞로 여의도까지 갔다가 돌아와달라”고 부탁했다. ‘시속 50㎞’는 정부가 지난 17일부터 전국 도심 일반도로에 일괄 적용한 새 제한 속도다.

주말에 뻥 뚫린 왕복 6차로의 노들로를 50㎞로 달리자, 뒷차 수십여 대가 답답한듯 잇달아 추월하며 60~80㎞로 내달렸다. 경적을 울리는 차량도 있었다. 노들로를 과속으로 달리던 차들은 단속 카메라 앞에서만 잠깐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았다. 50㎞로 달리니 주변 차량 흐름보다 현저히 느려 차로를 바꾸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였다. 정부가 ‘제한속도 50㎞’ 정책을 대대적으로 알렸지만 속도를 지키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기자를 태운 택시 기사 김모(62)씨는 “일요일에 이 정도 거리면 15~20분이면 가는데, 24분 걸렸다”며 “이런 간선도로까지 일괄적으로 50㎞로 달리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했다.

정부는 17일부터 일반도로 제한 속도를 50㎞, 스쿨존을 비롯한 이면도로는 30㎞로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시행했다. 준비가 부족한 일부 지자체를 제외한 서울·부산 등 주요 지역은 곧바로 단속에 들어갔다. 기존 일반도로의 제한 속도는 시속 60㎞(편도 1차로)~80㎞(편도 2차로 이상)였다. ‘제한속도 50㎞’가 적용된 첫 주말, 시민들 사이에선 “도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제한”이란 반응과 “인명 사고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란 의견이 엇갈렸다.

이날 서울 시내에선 50㎞ 속도 제한을 지키지 않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특히 왕복 10~12차로인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종로구 세종대로, 용산구 한남대로 등 한산한 대로(大路)에선 60~80㎞ 수준으로 내달리다 단속 카메라 앞에서만 잠깐 속도를 줄이는 차들이 대부분이었다. 직장인 박모(40)씨는 “제한속도가 낮아졌다고 해 집을 나서면서 꽤 신경을 썼는데, 막상 도로에 나와보니 열에 아홉은 카메라 앞에서만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속도를 높이더라”고 했다. 택시 기사 이광호(62)씨는 “택시를 탄 손님들은 급하니까 탄 것인데 50km를 억지로 맞추다 애꿎은 택시 기사만 욕먹게 생겼다”며 “비현실적인 정책”이라고 했다. 시행 첫날인 17일 “우리나라 교통 체계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시속 50km로 틀어막으면 교통 체증 유발의 원인이 된다”며 ‘정책을 철회해달라’는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다.

반면 제한속도 낮춘 것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조모(38)씨는 “8살, 5살짜리 자녀가 있는데 차들이 골목길도 빠르게 달리고 횡단보도에서도 안 멈추는 경우가 많다”며 “차량 속도를 낮추는 정책에 무조건 환영”이라고 했다. 경찰도 ‘제한속도를 낮춰도 차량 흐름엔 문제가 없다’며 시민들의 적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전국 12개 도시에서 10여㎞ 거리를 시속 60㎞와 50㎞로 달리는 것을 비교해보니 평균 2분 정도 늘어나는 수준”이라고 했다. 또 시속 60㎞ 차량이 보행자와 사고가 났을 때 사망 가능성은 85%지만, 50㎞일 때는 55%로 줄어든다는 조사 결과도 내놨다.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좀 더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왕복 10~12차선의 주요 대로 등 통행량이 많고 교통 흐름이 원활해야 할 구간에선 예외적으로 제한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스쿨존 등 이면도로 역시 어린이들이 등·하교하지 않는 주말에는 단속하지 않는 등 상황에 따른 운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제한속도를 낮추는 정책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AI(인공지능)를 접목한 지능형 도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운행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