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범죄로 20대 취업 준비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전화 속 그놈’이 경찰에게 붙잡혔다. 40대 무직자인 목소리 주인공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사기 조직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서울중앙지검 김민수 검사'를 사칭해 전화금융 사기 행각을 벌여온 혐의로 40대 A씨 등 3명을 구속하고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월 20일 전북 순창에 사는 취준생 김모(28)씨에게 전화를 걸어 “김민수 검사다. 금융사기단 최모씨 일당을 검거했는데 당신 계좌가 대규모 금융 사기에 연루돼 일단 돈을 찾아야 한다. 불응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고, 전국에 지명수배령이 내려진다”고 협박해 420만원을 뜯어낸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김씨에게 “혐의점이 발견되면 구속 상태로 90일 동안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압박했고, 김씨 이메일로 가짜 검사 신분증과 사진이 박혀 있는 명함까지 보냈다. 하지만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김민수 검사라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김씨는 정읍의 한 은행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모아둔 420만원을 찾아 서울로 갔다. 마포구 한 주민센터 인근 택배함에 돈을 넣어두고 ‘김 검사’를 기다렸지만, A씨는 돈만 챙긴 뒤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간 김씨는 이틀 뒤인 지난해 1월 22일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 옥상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서에는 “통화 중 전화가 끊겨 검사님 연락을 못 받아 공무집행방해죄를 받게 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A씨를 검사로 믿었던 것이다.

김씨 사연은 지난해 2월 유족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내 아들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를 잡을 수 있을까요’라는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특별한 직업이 없던 A씨는 지인 소개로 2019년 4월 중국으로 넘어가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김씨가 숨진 뒤 중국에서 귀국해 경기도 수원에서 숨어 지내다 지난달 말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1년 5개월간 수사를 벌여 A씨를 포함, 이 조직의 범행과 관련된 98명(29명 구속)을 검거했다. A씨가 속한 조직은 지난 2015년 8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칭다오·쑤저우·하얼빈 등 중국 내 8개 지역에 콜센터 등을 차려놓고 검찰과 금융기관 등을 사칭해 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속이거나 저금리 대출을 제시하는 수법으로 300여명에게 100억원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