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을 마친 후 대학로, 종로를 거쳐 서울광장까지 이동하며 노제를 진행했다. 500여 명이 운구 행렬을 이뤘고, 서울광장에는 1000여 명이 모였다. 수도권 방역 지침에 따르면 장례식에는 99명까지 참석이 가능하지만, 이날 서울시는 해산이나 거리 두기 지침 준수를 요구하지 않았다. /장련성 기자

19일 오전, 서울 중구의 시청 앞 서울광장에 1000여 군중이 모였다. 지난 15일 별세한 백기완(89)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에 모인 인파였다. 장례를 주관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 8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을 마친 후 대학로, 종로를 거쳐 서울광장까지 이동하며 노제(路祭)를 진행했다. 경찰이 차량을 통제한 가운데 500여 명의 운구 행렬이 뒤따랐다. 영결식이 열린 서울광장에는 무대와 간이 의자 100여 개가 설치됐고, 광장 안팎엔 추모객 1000여 명이 몰렸다. 1~2m가량 거리를 둔 이도 있었지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추모객 무리도 많았다.

이날 영결식은 ‘평생을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온 백기완 선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시민들이 제대로 모시자’는 뜻에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방역 측면에선 명백한 지침 위반이다. 현재의 수도권 방역 지침에 따르면, 장례식에는 99명까지만 참석이 가능하다. 서울시 김혁 총무과장도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백기완 선생) 영결식도 100인 이상 집합 금지를 준수해야 하며, 지침 준수 여부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영결식에 모인 1000여 추모객에게 ‘해산’ 혹은 ‘거리 두기 지침 준수’를 요구하는 서울시 관계자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도 현장을 지켜만 봤다.

고(故)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작년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주요 반정부 집회를 일제히 금지하고 시민들이 접근조차 못하게 차벽(車壁)까지 쳤던 정부가 행사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대응을 한 것이다. 장례위는 서울시 불허에도 불구하고 지난 18일 “시민의 뜻”이라며 광장 분향소 설치를 강행했고 시민 조문도 받았다. 서울시는 “변상금 부과 등 법적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운영은 막지 않았다.

최근 코로나 상황은 4차 대유행이 우려될 만큼 심각하다. 영결식이 열린 19일 0시 기준 신규 코로나 확진자는 533명이었다. 지난해 경찰이 광화문 일대에 차벽을 치고, 시민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했던 10월 3일 개천절 집회 당시 확진자(52명)의 10배 이상이다.

정부는 설 연휴 ‘직계 가족도 5인 이상 모이지 말라’고 했다. 서울 등 수도권의 음식점과 술집, 유흥주점 업주 중에는 수개월째 생업에 제한을 받으며 피눈물을 쏟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친정부 인사 장례엔 유독 관대한 것이다. 직장인 김탁영(31)씨는 “이번 설에 고향에도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이렇게 이중 방역 잣대를 내세워도 되느냐”고 했다.

‘이중 잣대 아니냐’는 지적에 서울시 관계자는 “(영결식) 현장 채증 자료를 토대로 감염병법 위반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도 “영결식 같은 관혼상제는 집회·시위법상 예외가 적용된다”며 “서울시가 감염병법 위반으로 고발하면 조치에 나서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