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3, 4학년 연년생을 둔 서모(40)씨는 집 앞 마트에 들러 장 보는 게 유일한 자유 시간이다. 일주일에 3번 아이들이 등교한 뒤 마트에 갈 수 있다. 장을 보고 온 뒤에는 또 청소, 빨래를 하다 보면 하교 시간이 다가온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엔 아이들이 방과후 수업도 받고, 친구네 집에서 종종 놀다 왔지만, 요즘은 집 근처 영어 학원에 일주일에 두 번 가는 시간을 빼면 하루 종일 집에서 엄마만 쳐다보고 있다. TV나 유튜브를 보려고 하는 아이들과 실랑이하다 지친다. 등교하지 않는 날에는 원격 수업까지 봐줘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늘어난 자녀 돌봄 시간

서모씨는 “1년 가까이 하루 세 끼 밥 차리고 애들 뒤치다꺼리만 하다 보니 너무 지쳐서 힘들다”면서 “남편이 주말에라도 애들 데리고 한참 나가 있다 와주면 좋겠는데, 그것도 몇 시간뿐”이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10개월째 이어지면서 전업주부들의 육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전업주부들은 평소에도 육아와 가사 대부분을 도맡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로 학교나 학원 등이 손을 덜어주지 못하면서 더 커졌다. “전업 주부 대부분이 ‘코로나 블루(우울증)’를 앓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전업주부 돌봄 시간 3시간 넘게 급증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하는 ‘노동리뷰’ 11월호에 실린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녀 돌봄의 변화’ 보고서에는 이런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갤럽이 지난 6~7월 만 12세 이하 자녀를 둔 기혼 남녀 1252명을 설문한 내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업주부들의 자녀 돌봄 시간이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는 하루 평균 9시간 6분이었는데, 코로나 상황 속에서 12시간 38분으로 3시간 32분이나 늘어났다.

맞벌이 가구 취업 여성의 자녀 돌봄 시간은 5시간 3분에서 6시간 47분으로 1시간 44분 늘었고, 맞벌이 가구의 취업 남성은 3시간 8분에서 3시간 54분으로, 홑벌이 가구의 취업 남성은 3시간 1분에서 3시간 30분으로 각각 46분, 29분씩 늘어나는 데 그쳤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부부간 자녀 돌봄 분담(평일 기준)도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전업주부들은 코로나 전에는 자녀 돌봄의 69.6%를 맡았지만, 코로나 기간엔 80.2%를 맡는다고 답했다. 반면, 맞벌이 가구의 취업 여성(51.2%→51.7%)과 맞벌이 가구의 취업 남성(24.7→27.4%), 홑벌이 가구의 취업 남성(19.6%→22.7%)은 자녀 돌봄 분담 비율이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업주부 “혼자 있는 시간 필요하다”

전업주부는 자녀와 보내는 시간에 대한 생각도 다른 부모 집단과는 달랐다. ‘코로나 이전보다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았다’고 대답한 비율이 맞벌이 가구 취업 남성과 여성, 홑벌이 취업 남성은 모두 70~80%대로 높았는데, 전업주부는 65.8%에 그쳤다. 대신 전업주부들은 “자녀와 떨어져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는 응답이 76.4%에 달했다. 맞벌이 여성(56.5%), 맞벌이 남성(33%), 홑벌이 남성(41.6%)보다 매우 높은 수치다.

이에 대해 은기수 교수는 “전업주부들은 평소에도 자녀를 거의 전적으로 돌보기 때문에 코로나로 자녀 돌보는 시간이 더 늘어난 것은 즐겁고 기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적 부담, 스트레스 증가로 인식되는 면이 다른 집단보다 크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코로나로 인한 직업별 스트레스 경험을 조사했을 때도 전업주부가 5점 만점에 3.71점으로 직업군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났다.

◇돌봄·급식 파업 등으로 스트레스 가중

보고서를 보면 전업주부만큼은 아니지만 맞벌이하는 여성 역시 남성들에 비해 코로나 기간 동안 자녀 돌봄 시간이 크게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재택근무를 못하는 경우도 많고,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일과 육아를 같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학교 돌봄 교실 덕분에 버티는 가정도 많은데, 지난 6일과 19~20일에는 돌봄 교실과 급식 파업까지 벌어져 가슴을 졸여야 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학비연대)는 처우 개선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교육 당국과 협의가 잘 진행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달 중 한 차례 더 돌봄 파업을 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초2 자녀를 둔 맞벌이 주부 장모(39)씨는 “지난번에도 갑자기 돌봄 교실이 파업하는 바람에 급히 부모님 댁에 아이를 맡겼다”면서 “코로나가 길어져서 모든 부모들이 힘든데, 제발 이제 파업 같은 걱정할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