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고교 교사 김모(30)씨는 지난해에는 영어 수업에서 교육부가 만든 디지털 교과서를 썼지만 올해는 쓰지 않는다. 김씨는 “종이책에선 단어에 밑줄을 그은 뒤 바로 해석을 적을 수 있지만, 교육부 디지털 교과서로는 할 수 없다"며 "디지털 방식으로 단어 위에 색깔을 표시하거나 메모를 다는 기능이 각각 있긴 있는데, 한번 색칠한 단어 위에는 메모를 동시에 달 수 없게 만들어놔 불편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지난 13년간 577억원을 쏟아부어 만든 ‘디지털 교과서’가 교육 현장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VR(가상 현실) 영상 등 일부 기능이 PC에서는 실행되지 않고, 이전 학습 부분을 보여주는 ‘책갈피 기능’도 PC에서는 접속(로그인)할 때마다 기록이 사라지는 등의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확산으로 온라인 수업이 도입되면서 디지털 교과서 수요가 늘었는데, 현장에선 “불편하다” “교실에서 활용하기에 부족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형편인데도 교육부는 내년 디지털 교과서 등을 활용하는 선도학교 400곳을 지정, 태블릿PC 등 인프라와 교수·학습 모델을 제공하는 데 486억원을 추가로 쓰겠다고 발표했다.

◇VR 영상은 PC서 작동 안 해

27일 교육부에 따르면, 8월 기준 올해 디지털 교과서를 다운로드한 횟수는 1182만1353건으로 전년(197만4864건)보다 6배로 폭증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선 교사 1879명 중 1229명(65.4%)이 “(올해) 원격 수업 중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교사들이 디지털 교과서를 내려받고도 수업엔 잘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디지털 교과서의 기능 등이 교육부가 홍보한 수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VR(가상 현실) 영상 콘텐츠 등을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홍보해왔지만 “PC에선 바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강원도에서 근무하는 김모(31) 교사는 “교육청에서 VR 콘텐츠를 작동시키는 코드가 포함된 교과서 PC 화면을 종이로 출력해서, 이걸 다시 모바일이나 태블릿PC 등에 입력해 실행하라고 안내하더라”고 했다.

교사들은 교육부의 디지털 교과서가 민간 업체들이 제공하는 디지털 교과서 콘텐츠보다 과목 수도, 기능도 적다고 지적한다. 민간 디지털 교과서는 대부분 화면에 바로 필기나 메모가 가능하고 책갈피 기능이 있다. 반면, 교육부가 제공하는 건 이런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사 손모씨는 “화면 위에 필기하는 기능은 그림판 수준이라 디지털 펜을 쓰는 태블릿PC로도 쓸 수 없는 지경”이라고 했다. 그는 또 “디지털 교과서를 처음 쓸 땐 최소 20개가 넘는 소단원을 다 내려받아야 해 교과서 펴기만 30분씩 걸려 사용을 포기했다”고 했다. 민간 업체들은 가정, 실기, 음악, 체육 등까지 다양한 과목의 디지털 교과서를 전자책 형태로 제공 중이지만, 교육부는 초 3~6학년과 중 1~3학년은 과학, 사회, 영어, 그리고 고교 과정은 영어 과목의 디지털 교과서만 제공하고 있다.

◇종이책보다 쉽다는 오류 수정도 방치

디지털 교과서는 종이책보다 오류 수정이 쉬워야 하는데, 교육부가 오류를 수정하는 속도도 느리다. 예컨대 2018년 개정된 초등학교 ‘사회 4-2’ 디지털 교과서에 중앙지법 사진을 올려놓고 ‘대법원’이라고 적거나 인천광역시 사진이라며 홍콩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붙였었는데, 2년 만인 지난 22일 수정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잘 쓰지 않던 디지털 교과서 다운로드가 최근 부쩍 늘면서 오류 지적이 는 것뿐"이라고 했다.

초등 교사 김모(34)씨는 “일부 학교는 교사 연수비를 쪼개서 아예 민간 업체 디지털 교과서를 추가로 구입한다”며 “교육부가 추가로 쓰겠다는 돈은 낭비되지 않도록 지금 있는 디지털 교과서와 플랫폼 정비나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