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노조 회계 공시 요구를 거부하던 한국노총이 23일 “(정부가 만든)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에 (한노총의) 회계 결산 결과를 등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노총과 민노총은 매년 수천억원의 노조비를 쓰고도 어디에 돈을 쓰는지 외부에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말 노동 개혁을 강조하며 “노조 활동도 투명한 회계 위에서만 더욱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거대 노조의 강성 파업과 깜깜이 회계, 노노(勞勞) 간 착취 문제는 우리 노동계의 3대 적폐로 꼽혔다. 이날 한노총의 ‘회계 공시’ 발표는 거대 노조의 주요 성역 중 하나가 무너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노총은 1961년 결성 이후 회계를 외부에 완전히 공개한 적이 없다.

한국노총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 제외’ 등 조합원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회계 결과를 등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 초 개정한 노조법 및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라 회계 정보를 공시 사이트에 입력한 노조에게만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노조 조합비는 지정 기부금으로 분류돼 15%의 공제율로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노조 조합비가 월 3만원씩 1년에 36만원이라면 조합원이 5만4000원(36만원의 15%)의 세금을 돌려받는 구조다. 거대 노조가 ‘깜깜이 회계’를 고집하면 노조원은 금전적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노조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 일반 노조원들도 궁금해하고, 정당하게 썼다면 공개 못 할 이유가 없다는 노조 내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러나 한노총은 “현행 법을 준수하고 조합원 피해를 방지하려는 것일 뿐 정부가 개정한 (노조 회계 관련) 시행령에 동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했다. 개정 시행령이 연좌제에 해당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겠다”고도 했다. 민주노총은 회계 공시를 거부하고 있으나, 내부에선 공시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계 관계자는 “정부와 노총이 회계 투명성을 놓고 힘 싸움을 벌였는데, 한노총이 현실적 문제로 물러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