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부문에서 일하는 30대 남성 직원 A씨는 지난해 옆자리 후임 B씨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당했다. A씨가 사무실 밖으로 나갈 때마다 B씨 모니터를 뒤에서 훔쳐보고 감시했다는 것이다. A씨가 “그런 적 없다”며 정식 조사를 요청하자, 회사는 “사과 편지를 쓰라”고 종용했다. A씨 거절에 부서장은 “갑질범 쫓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라고 압박했다. A씨가 사과 편지를 써서 건네자, B씨는 이를 근거로 A씨에게 ‘피해 보상금’을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전형적인 ‘허위 신고’라고 판단했다.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 갑질 및 비리 신고센터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News1

그런데 이 회사는 ‘진짜 괴롭힘’ 사건이 발생하자 전혀 다르게 대응했다. C임원이 회식 자리에서 계약직 직원 D씨를 옆자리에 앉혀 술을 따르게 하고 귀가할 때 자신의 택시에 강제로 태우려고 한 사건에서다. D씨가 신고하자 회사는 “술에 취해 실수한 것”이라며 “없던 일로 하면 정규직 전환을 해 주겠다”고 회유했다. 자리를 함께한 직원들에게는 “C임원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마라”고도 했다. 기관장은 조회 시간에 “성희롱 신고는 해사(害社) 행위”라며 D씨를 압박하기까지 했다.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이 직장 내 괴롭힘 사건과 관련한 126건 중 진짜 괴롭힘 사건이 발생한 회사 7곳의 사례를 분석해 최근 공개한 내용 중 일부다. 상당수 회사들은 만만한 직원들이 ‘허위 신고’를 당하면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가짜 피해자’ 편을 들었다. 그러나 사업주 등 힘 있는 고위직이 아랫사람을 실제 괴롭힌 사건에서는 오히려 ‘진짜 피해자’를 압박하면서 가해자를 옹호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 기업에선 후임자의 허위 신고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직원이 ‘정신적 피해 보상금’까지 물어주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부장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여직원 사건에서는 정반대로 대응했다. 여직원 E씨가 “부서 회식이 있다는 부장 연락을 받고 나가면, 부장이 혼자 있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부장이 버스가 끊길 때까지 야근시키고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차에 태웠다”고 신고하고 부서 이동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이를 거부했다. 오히려 회사 관계자는 “네가 여지를 준 것 아니냐. 서로 오해를 풀라”고 했다.

서 위원에 따르면 분석 대상 7곳 중 ‘허위 신고 피해’를 당한 경우는 평사원이 5건, 중간 관리자는 2건이었다. 반면 진짜 괴롭힘 사건에서 가해자는 임원 등 고위급이 3건, 사업주와 임원 승진을 앞둔 부서장, 원청 업체 부서장이 각 1건 등이었다. 평사원이 가해자인 경우는 1건 있었지만, 사업주와 연줄이 있는 인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