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회계 장부 등 관련 서류 제출 요구를 상당수 노동조합이 여전히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5일 1차 마감 시한까지 대상 노조 중 204개(63%)가 서류를 아예 안 내거나 부실 제출하자, 정부는 추가 제출 기회를 줬다. 그러나 여전히 136개(42%)가 정부 요구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5일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회계 등 관련 자료 제출 노조 명단(2월 28일 오후 6시 기준)을 본지가 분석한 결과, 추가 제출 기한 동안 68개 노조가 새로 서류를 냈다. 68개 중 표지·속지 등을 요구에 맞게 다 제출한 곳은 38개, 나머지 30개는 여전히 부실 제출했다. 이로써 전체 대상 322개 노조 중 58%(186개)가 정부 지시를 제대로 따르고, 42%는 부실 제출한 상태다. 현행법상 노조는 사무실에 조합원 명부와 규약, 임원 주소록, 회의록을 비롯해 예산서와 결산서, 총수입·지출 원장, 수입·지출 결의서, 지출 증빙서 등을 갖춰놔야 한다.

아예 제출을 거부한 노조 규모도 1차 51개에서 13개까지 줄었다. 여전히 형식적인 서류 제출조차 거부하는 노조는 민노총에선 일반노조와 전국민주여성노조, 전국여성노련 등이 있고, 한노총에선 전국건설기계일반노조, 전국건설산업인노조, 전국공공행정기관노조, 전국공무직노련, 전국금속노련, 한국남부발전노조, 한국농어촌공사노조가 표지조차 내지 않았다. 전국건설산업노조는 위원장이 10억원대 횡령 사건을 저지르고, 최근 한노총 수석 부위원장에게 금품을 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는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양대 노총 소속이 아닌 곳 중에선 대한민국퇴직공무원노조, 전국단위건설신노련이 자료 제출을 전면 거부했다.

고용부는 1차 시한인 지난달 15일 이후 계속 자료 보완 등을 요구하고, 순차적으로 시정 명령을 내리고 있다. 이에 노동계는 “비치 의무는 있지만, 정부가 이를 내라고 할 의무는 없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장부 자체를 제출받는 것이 아니라, 비치를 제대로 해놨는지만 확인하는 것”이라는 입장. 고용부는 이르면 오는 15일부터 회계 장부를 제대로 안 낸 노조에 최대 500만원 과태료를 매기는 등 제재에 들어갈 방침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작년까지 최근 10년 동안 노조 관련 서류를 제대로 비치하지 않거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조 7곳에 총 1150만원 과태료를 부과한 바 있다.

앞서 정부는 노조 회계 투명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지난달 1일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 327곳에 ‘노조 관련 서류 표지 1장과 속지 1장을 사진으로 찍어 보고하라’고 했다. 대상 노조는 327개였지만 일부가 해산한 것으로 확인돼 322개로 줄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양대 노총 지도부는 이번 정부 지시를 놓고 “노조에 대한 공격”이라며 표지만 내고, 속지는 내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양대 노총 산하 대형 산별 노조 대부분은 지침대로 내지 없이 표지만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민노총은 본부 산하 산별 노조 16곳 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1곳만, 한노총은 제출 대상 산별 노조 25곳 중 6곳만 자료를 제대로 제출했다.

지난달 15일까지 자료를 제대로 낸 노조는 118곳(전체의 36%)에 그쳤는데, 지난달 28일에는 186개(58%)로 늘었다. 민노총에선 국가철도공단노조, 그랜드코리아레저노조, 삼성생명보험노조, 전국민주택시노조, 한국국토정보공사노조, 한국조폐공사노조, 한국지역난방노조, 홈플러스일반노조 등이 지난달 15일 이후 자료를 충실하게 제출했다. 한노총에선 LG이노텍노조, LH한국토지주택공사노조, SK이노베이션노조, S-OIL노조 등 45개 노조가 자료를 추가로 성실하게 제출했다.

광양시공무원노조, 여수시청공무원노조, 영주시청공무원노조, 부산공무원노조 등 공무원 노조들도 대거 추가로 자료를 제출했다. 부산교사노조와 부산교육청공무원노조는 당초 지난 15일 이전 자료를 모두 제대로 제출했으나, 집계 과정에서 누락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은행 노조 역시 자료를 모두 제출했다. 교사노조연맹은 “처음 자료를 제출하다보니 의도치 않게 제출이 늦어졌을 뿐, 내지까지 내라는 정부 요구가 노조 탄압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며 “관련 자료를 적극적으로 제출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