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의) 지불 능력과 근로기준법 바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요구를 사회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죽을 줄 알면서도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렸습니다.”

한석호 전태일 재단 사무총장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이 정부 주도 상생임금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밝힌 각오다. 한 총장은 24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상생임금위 2차 회의에 참석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민주노총에서 상생임금위원 사퇴와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사퇴 요구를 받았다”고 전했다. 민주노총은 한 총장의 상생임금위 참여를 반대하며 지난 8일 전태일재단에 3월 2일까지 한 총장의 사퇴 여부를 알려달라고 협박성 통첩을 한 바 있다. 상생임금위원을 사퇴하지 않으면 전태일재단에서 제명하도록 하고, 그것도 안 되면 민주노총은 전태일재단과 더이상 함께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한 총장은 민주노총에서 조직실장과 사회연대위원장, 비상대책위원 등을 지낸 명망 있는 노동운동가다.

한 총장은 이날 “저에게 상생임금위 참여는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린 형국”이라며 “40년 운동가의 삶이 끝장날 수 있다는 악몽에 시달리며, 어떤 밤은 홀로 들판을 헤매다가 어떤 밤은 철망에 갇혀 있다가 어떤 밤은 흐느끼다가 눈뜨는 나날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빨리 떨어져 죽으라고 던지는 돌멩이는 그대로 얻어맞을 생각”이라고도 했다.

상생임금위는 호봉제 등 연공급 위주 임금 체계 개편, 대기업·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고용 안정성 격차로 빚어지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2일 정부 주도로 발족한 단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기재부 등 관계 부처 고위 공무원과 학계·현장 전문가 등 20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상생임금위를 내세워 임금 체계 개편이라는 명목으로 임금 삭감을 추진한다”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민노총 내 대표적 노동운동가인 한 총장이 참가를 결정하자 “윤석열 정부 노동 개악에 명분만 더해주고, 들러리가 될 것”이라면서 비난하고 있다.

지난 7일 열린 민노총 정기 대의원 대회에서도 “반노동 기구인 상생임금위는 임금을 하향 평준화하려는 기구인데, 이런 곳에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이 들어간 것은 (전태일 열사) 이름을 파는 것” “민주노총이나 전태일재단에서 제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민노총은 이튿날인 8일 양경수 위원장 명의로 전태일재단에 공문을 보냈다. 전태일재단이 한 총장을 상생임금위에서 탈퇴시키고, 그게 안 되면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에서 사퇴시키라고 요구했다. 그러지 않으면 전태일재단에 대한 민노총 참여를 재고하겠다고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 총장은 주변 인사들에게 “내 청춘 다 바친 내 조직(민주노총)이 나를 배척한다는 것이 참 힘들다. 속상하고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상생위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한 총장은 회의에서 “노동시장 이중 구조 문제의 핵심은 (사업주의) 지불 능력이 있고,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안’과, 그렇지 못한 ‘바깥’의 격차에 있다”며 “(이렇게 바깥에 있는) 하청 노동, 불안정 노동, 영세 소상공인, 플랫폼, 프리랜서 등이 무려 1500만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바깥에서 일하는 노동자 다수는 매일 8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연 2만달러(약 2612만원)가 안 되는 임금·소득으로 살아간다”며 “이들에게 연 소득 3000만원은 보장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과 사회적 임금 및 사회적 소득 등을 거론했다. “(상생임금위가 추진하는) 임금 체계 개편 이전에 하위 임금은 많이 인상하고 상위 임금은 적게 인상하는 ‘하후상박 임금 연대’나 상위의 소득 점유율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고 남는 것은 바깥 노동으로 돌리는 ‘소득 연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