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사무실에 회계 장부를 비치했음을 증빙하지 않는 노조에 대해 정부가 올해부터 지원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 또 지금껏 한국노총·민주노총 소속 노조에 몰아주던 지원금의 절반을 양대 노총이 아닌 근로자 협의체 등에 나눠주고, 노조 간부 연수와 해외 출장 등에는 지원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23일 이 같은 내용의 ‘노동단체 지원 사업 개편 방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새 방안은 다음 달 시작하는 올해 노동단체 지원 사업에 곧바로 적용된다.

정부와 시·도 17곳(광역자치단체)은 매년 300억원가량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지원해 왔다. 지난해에는 정부 노동단체 지원 예산 35억900만원 중 약 90%를 두 노총과 그 산하 조직들이 받아갔고, 시·도 17곳이 두 노총에 265억9800만원을 줬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228곳이 두 노총에 준 지원금은 포함하지 않은 액수다. 이 가운데 중앙정부 예산으로 두 노총에 지원하던 금액을 축소하고, 회계 공개 의무를 위반하는 노조에 대한 지원은 아예 중단되는 것이다. 올해 정부의 노동단체 지원 예산은 지난해보다 9억원가량 늘어난 44억원이다.

고용부는 지난 1일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와 상급 단체 327곳에 공문을 보내 회계 장부 등을 사무실에 비치하고 있음을 증빙하는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다. 현행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각 노조는 조합원 명부와 규약, 임원 성명·주소록, 최근 3년 치 회의록 및 재정 관련 장부·서류를 외부에 공개할 필요는 없지만, 노조 사무실에는 비치해야 한다. 조합원들이 노조 운영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정부는 노조법상 언제든 각 노조에서 운영 상황을 보고받을 권한이 있다.

고용부는 각 노조에 사무실에 비치한 문서의 앞쪽 표지와, 수백 쪽에 달하는 속지 중 한 장을 사진 찍어 보내면 증빙이 된 것으로 인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노총·민노총은 산하 노조들에 속지는 제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두 노총 산하 노조 238곳 중 119곳은 표지만 찍어 보냈고, 36곳은 아예 아무 것도 제출하지 않았다. 고용부로서는 노조가 비치했다는 서류가 진짜인지, 표지만 꾸며낸 가짜인지를 확인할 방도가 없게 됐다.

고용부는 이런 노조들을 “회계 관련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단체”로 보고, 노동단체 지원 사업 대상에서 원천 배제하기로 했다. 고용부는 “노동단체 지원 사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고 보조금 사업이므로, 회계가 투명한 단체에서 수행해야 책임 있게 운영할 수 있으며 재정 낭비도 막을 수 있다”며 “회계 관리는 법상 노조에 부여된 의무이자 정부 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라고 설명했다.

노동단체 지원 사업을 통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단체의 범위는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해까지는 노조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지원금 예산의 90%가량이 두 노총과 산하 노조들에 돌아갔다. 고용부는 올해부터는 “근로자로 구성된 협의체”이기만 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해, 두 노총 소속이 아닌 대다수 근로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최근 발족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중심의 ‘새로고침 노동자 협의회’를 비롯, 지역·업종별 근로자 협의체, 직장 협의회, 비정규직 근로자나 플랫폼 종사자들이 구성한 단체도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다.

고용부는 또 올해 예산의 절반인 22억원은 반드시 신규 참여 단체에 주기로 했다. 매년 30억원 이상을 받아온 한노총·민노총과 산하 노조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은 이에 따라서 최대 22억원으로 제한된다. 이들이 ‘회계 문서 사무실 비치’ 증빙을 끝까지 거부하면 이마저도 받을 수 없다.

지금까지는 두 노총이 모범 근로자 해외 연수, 노동단체 국제 교류 사업 등 명목으로 신청한 사업에도 지원금을 줬지만, 앞으로는 노조 간부 교육과 국제 교류 사업에는 지원을 중단한다. 고용부는 이런 사업 대신 취약 근로자 권익 보호와 격차 해소, 산업 안전 관련 사업 등을 주로 지원하기로 했다.

고용부의 이번 발표로 두 노총에 대한 지원금이 모두 축소·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두 노총에 매년 200억원 이상 지급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은 정부가 직접 관여할 수 없다. 또 정부가 과거에 지급해 두 노총이 사무실 임차 보증금 등으로 쓰고 있는 지원금은 회수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