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9일 외국인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업종을 대폭 확대하고, 10년간 체류할 수 있는 특례도 신설하는 등 고용허가제 전면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2020년 3월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한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면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하는 모습. /김지호 기자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도입 19년 만에 전면 개편된다. 지금까지 4년 10개월 일하면 출국해야 했던 외국인 근로자가 10년 이상 연속 근무가 가능해지고, 외국인 근로자 고용이 가능한 직종도 확대된다. 가사 도우미, 베이비시터, 물류센터 등 외국인 고용 요구가 높았던 직종에 대한 장벽도 폐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중국·중앙아시아 출신 동포에게는 일부 업종만 제외하고 모든 업종에 대한 취업이 개방될 전망이다. 정부는 고령화와 저출생, 코로나 유행에 따른 산업 인력난에 대비하기 위해 외국 인력 도입을 적극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28일 제36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이 심의·의결됐다고 29일 밝혔다. 고용부는 개편 배경에 대해 “고용허가제 도입 후 산업 현장과 인구 구조가 급격히 변화했고, 실제 인력 수급 상황에 맞게 제도를 개편하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고용허가제는 국내에서 인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 허가를 받아 외국의 비전문·미숙련 인력을 고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2004년 도입됐다. 제조업·농축산업·어업·건설업 등 일부 업종에 한해, 정부가 매년 업종별로 고용할 수 있는 숫자를 정한 뒤 인력 도입 협약이 돼 있는 일부 국가 근로자를 입국시키는 방식으로 시행돼 왔다. 현재 중국·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필리핀·베트남 등 16국으로부터 근로자를 받고 있다. 이렇게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고, 최장 4년 10개월까지 국내에 체류할 수 있다. 이 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출국해야 하며 일부 재입국 허용 대상자도 출국 뒤 6개월이 지나야 입국이 가능하고, 다시 4년 10개월이 지나면 영구 출국하도록 돼 있다.

체류 기간을 4년 10개월로 제한한 것은 국내에 연속으로 5년 이상 체류한 외국인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돼 있었던 제도의 악용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출입국관리법이 개정돼 E-9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는 5년 이상 체류해도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게 됐지만 이런 이유로 설정됐던 4년 10개월은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채용 기업들은 숙련된 외국인을 4년여마다 내보내고 새로운 미숙련 근로자를 받아들여야 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고충을 토로해 왔다.

고용부는 ‘장기근속 특례’를 도입해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숙련되고 한국어 구사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인 외국인은 출국·재입국 과정 없이 10년간 계속 일할 수 있게 하기로 했다. 고용부는 재계·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해 체류 가능 기간을 10년보다 더 길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또 제조업·농축산업 등 ‘업종’ 단위로 고용 허가 규모를 정하던 기존 방식을 바꿔, 세부 ‘직종’ 단위로도 고용 허가를 하기로 했다. 인력이 부족한 직종에 대해 맞춤식으로 외국 인력을 도입해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먼저 내년부터 화물 상·하차 직종에 대해 외국인 고용이 허용된다. 또 가사 도우미나 베이비시터 등 일부 서비스 업종에 외국인을 고용하는 방안도 시범사업 등을 거쳐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 내에선 음식점업에서 주방 보조 등으로 외국인 고용을 허용하는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두고 일감이 생긴 곳에 그때그때 파견할 수 있게 하는 ‘외국인 인력사무소’ 허용도 검토된다. 현재는 외국인 근로자는 파견 근로를 시킬 수 없게 돼 있지만, 앞으로는 농·수산물 가공 등 인력을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일자리에 외국인 근로자를 보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6국 출신 동포, 즉 ‘조선족’과 ‘고려인’에게 부여되는 방문취업(H-2) 비자에 대해서는 국내 취업 기회가 대폭 확대된다. 기존에는 정부가 허용한 일부 업종에만 취업이 가능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금융업·연구개발업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제한 없이 취업할 수 있다. 또 한국에 인력을 보내는 16국 출신 유학생에 대해서는 학업 종료 후 E-9 외국인 근로자로 신분을 전환해 취업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정부가 외국 인력 활용을 대폭 확대하기로 한 것은 갈수록 산업 인력난이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기업이 구인을 했는데도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한 ‘빈 일자리’가 올 하반기에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기업이 120만6000명을 구인했으나 102만1000명밖에 채용하지 못해 18만5000개의 일자리가 비어 있다. 제조업 5만8000개, 운수·창고업 2만8000개, 도·소매업 1만9000개,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 1만6000개 등이다. 미래에는 인구 감소로 인력난이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내국인 가운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15~64세의 ‘생산 가능 인구’는 올해 3668만명에서 2038년 2964만명으로 16년 새 700만명 이상 줄어든다. 2070년에는 올해의 절반을 밑도는 1737만명까지 떨어진다.

이미 국내 산업은 외국인 근로자가 제공하는 인력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국내에 취업 중인 외국인은 2013년 66만7900명이었으나 2018년 88만4300명까지 늘었다. 코로나 확산으로 국가 간 인력 이동이 제한되면서 일부 감소했으나 올해도 여전히 84만3000명이 취업 중이다. 고용부는 외국인 근로자 도입 확대로 내국인 일자리가 잠식될 위험성보다는 숙련된 인력을 확보해 산업 인력난을 줄일 필요성이 더 크다고 봤다.

다만, 고용부가 이날 발표한 개편안이 내년에 모두 시행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장기근속 특례 도입과 외국인 근로자 파견 허용 등은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 고용부는 “법령 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노사와 전문가 의견 수렴 및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에 개정안을 발의하도록 추진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