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현대제철을 비롯한 40개 사업장에서 노사가 ‘고용 세습’ 조항을 포함한 단체협약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에 따르면 고용노동부가 올해 5~6월 조사한 100인 이상 사업장 1057곳 중 63개 사업장이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 업무 외 상병(傷病)자, 직원 직계 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단체협약 조항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특별 채용 단체협약’ 사업장 명단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자료=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

분석 결과, 63곳 중 40곳이 ‘정년퇴직자의 가족이나 피부양자를 우선 채용한다’는 단체협약 조항을 가지고 있었다. 중소기업이 많았지만, 현대제철과 현대위아, OCI 포항공장, 효성 창원공장 등 대기업도 상당수 있었다. 원광대의대 산본병원, 인천기독병원, 한일병원, 건국대 충주병원 등 의료기관도 많았다. 기아차와 자일대우버스의 경우 정년퇴직자 외에 장기근속자 가족에 대해서도 우선 채용 조항이 있었다.

세아창원특수강은 정년퇴직자 자녀나 형제자매에게 직원 공채 시 100점 만점에 10점 가산점을 주는 조항이 있었다. 삼안여객 등 5곳은 ‘노조나 직원 추천을 받아 채용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이 중 현대성우오토모티브코리아의 경우 정년퇴직자 직계 자녀를 우선 채용하도록 했고, 이와 별도로 직원 자녀나 직원이 추천한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도록 했다. 63곳 중 나머지 사업장들은 주로 산재가 아닌 업무 외 질병 사망자 가족을 우선 채용하도록 한 곳이다.

정년퇴직자 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단체협약은 수년 전부터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기존 직원 가족이라는 이유로 채용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박탈해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고용정책기본법도 채용 때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취업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정부 역시 해당 조항들의 위법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산업재해 사망자 가족을 우선 채용한다는 단체협약에 대해 법원이 지난 2020년 “소중한 목숨을 잃은 근로자의 특별한 희생에 대한 보상이라 위법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63곳에는 산재 사망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곳은 들어 있지 않았다.

정년퇴직자 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조항을 가진 사업장의 노조 상당수는 민노총 소속이었다. 40곳 중 최소 25곳이 민노총 소속으로 확인됐다. 금속노조 산하 노조가 15곳으로 가장 많았고, 보건의료노조 산하가 5곳으로 뒤를 이었다.

노동계에서는 이에 대해 “이미 사문화됐고, 단체협약으로 실제 채용된 사례는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수십 년 전,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다들 기피하던 시기에 사람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고, 숙련공을 오래 붙잡아두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나온다. 한 노동계 인사는 “특혜 우선 채용을 했다 해도 회사도 이를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밖에서는 내용을 알기 어렵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2018년 국회에서 “울산 한 회사에서 몇 년 동안 퇴직을 앞둔 조합원 자녀와 친인척, 지인 등 40명을 채용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사문화된 조항이 맞는다면 왜 그동안 해당 조항을 그대로 뒀느냐”는 지적도 있다. 실제 기아차 노조(소하 지회)는 지난해 11월 회사가 5년 만에 생산직 신규 채용을 검토하자 단체협약을 근거로 ‘정년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라’고 회사에 요구했다.

정부는 해당 조항들에 대해 시정 조치를 내리고 있는 중이다. 일부 사업장은 해당 조항을 삭제했거나(샤니·코카콜라음료), 내년에 삭제할 예정(삼양옵틱스)이다. 이주환 의원은 “고용세습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고, 노조원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자리를 얻는다면 다른 청년들에게는 기회조차 박탈하는 불공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