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받으면서 노동조합 일을 하는 ‘유급(有給) 노조 전임자’를 몇 명까지 둘 수 있을까. 노동계와 경영계가 첨예하게 맞선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time off)’<키워드 참조> 한도 문제가 8년 만에 불이 붙었다. 대통령 직속 노사정(勞使政) 대화 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문성현 위원장이 30일 근로시간면제 심의위원회에 타임오프 한도 조정 심의를 요청했다. 사실상 한도를 늘려달라는 의미라는 해석이 많아 경영계가 반발하고 있다.

타임오프는 1997년 노조법이 회사가 임금을 주는 걸 원칙적으로 금지하도록 개정되면서 출발한다. 회사로부터 돈을 받으면 회사 눈치를 보고 노조 자주성을 잃을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회사가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는 경우가 다수였기 때문에 법 적용은 2009년까지 유예됐고 이후 다시 현실을 고려해 2010년 타임오프제를 도입했다.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은 국제적으로도 통용된다. 다만 일부 국가에서 예외를 인정해 타임오프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 전임자는 일정 시간을 일을 하지 않아도 한 것처럼 회사에서 인정해 월급을 준다. 그 범위는 조합원 수에 따라 2000~3만6000시간인데 이를 다시 논의하자는 게 이번 심의 요청 내용이다. 한도가 늘어나면 월급을 받으면서 노조 일을 할 수 있는 조합원 규모도 늘어나는 구조다.

이번 타임오프 한도 심의는 지난 2013년 5월 이후 8년여 만이다. 당시 50인 미만 노조에도 100인 미만 노조와 같은 시간 한도를 적용(1000시간→2000시간)하면서 이전 2010년 정했던 한도를 소폭 늘린 바 있다. 하지만 한도를 늘리면서 “경제 위기 심화나 노사관계 문제 등 특별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만 한도를 재심의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시 심의하지 않는다고 한 셈이라 이번 심의 개시는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노동계는 반기고 있다. 특히 한국노총(한노총)은 숙원 사업 중 하나로 타임오프 한도 확대를 주장해왔다. 한노총과 민주노총(민노총) 모두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하다. 직원을 직접 채용하기도 하지만 산별노조나 연맹, 지역본부, 총연맹 등은 기업별 노조로부터 파견받는 직원이 적지 않다. 그런데 대규모 사업장이 많은 민노총과 달리 한노총은 중소기업이 많다보니 타임오프 한도가 상대적으로 적다. 한노총 파견 직원들은 소속 직장에서 무급 휴직을 하거나 소액 활동비만 받고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한노총은 결국 타임오프 한도를 늘리기 위해 정부와 국회를 압박했고,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추진하며 작년 노조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이를 관철시켰다. 개정 노조법은 작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회가 “경사노위는 법 시행 즉시 (타임오프) 심의에 착수하며, 연합단체 활동 등 실태를 고려한다”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이에 따라 경사노위는 지난 7월 6일 (타임오프) 심의위원회를 발족시켰고, 4개월 가량 만인 지난 30일 경사노위 위원장이 심의를 공식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한노총 입장을 반영해 법이 개정된 것인 만큼, 노동계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노총은 타임오프 한도를 늘리거나, 상급 단체 파견자들은 타임오프 한도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계는 “지금 타임오프도 실제로는 법보다 더 방만하게 운영된다”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선 지금도 법이 정한 한도보다 더 많은 전임자에 대해 기업이 사실상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총 관계자는 “타임오프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대해서만 적용돼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근로자 고충 처리 등 노사 모두에게 필요한 노조 업무를 하는 경우에 한해 주당 1시간을 면제해 주고 있고, 일본은 노조 전임자는 대부분 휴직 처리된다. 경총은 “심의위원회 실태조사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위원장이 성급하게 심의 요청을 했다”고 했다.

경사노위 위원장이 심의를 요청하면 위원회는 60일 이내에 근로시간 면제 한도에 대한 심의와 의결을 마쳐야 한다. 이에 따라 경사노위는 내년 2월 3일까지 논의를 마칠 계획이다.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Time-off)

회사는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적으로 일부에 한해 임금을 줄 수 있게 한 제도. 정해진 시간만큼 일하지 않아도 임금을 준다는 뜻에서 ‘근로 시간 면제’ 혹은 ‘타임 오프(Time-off)’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