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새벽 교통사고를 당한 70대 남성이 119 구급대에 구조됐으나, 응급 수술이 가능한 종합병원이 없어 약 2시간 만에 구급차 안에서 숨졌다. 당시 구급대는 사고 현장인 용인에서부터 종합병원 11곳에 연락했지만 ‘수용 불가’ 통보를 받았고, 100㎞나 떨어져 있는 의정부의 병원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30일 경기도소방재난본부와 용인동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 28분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편도 1차로 도로에서 A(74)씨가 후진하던 승용차에 부딪혀 넘어졌고 차량 아래에 깔렸다. 이 도로는 차도와 보도의 구분이 없고, 당시 차량은 도로 부근 주차가 가능한 공터에서 후진해 도로 쪽으로 빠져나오는 중이었다고 한다.

당시 신고를 받은 양지119안전센터 구급대원들은 10분 만인 0시 38분 현장에 도착해 A씨를 구조했다. A씨는 차량이 몸을 타고 넘어가는 바람에 복강 내 출혈이 의심됐다. 구급대원들은 경기 남부 권역외상센터가 있는 수원 아주대병원에 연락했으나 수용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A씨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소방재난본부 상황실에서 용인세브란스병원, 분당서울대병원을 연결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 119 구급대가 처음 연락했던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측은 “당시 병상 40개가 모두 꽉 찼고, 중환자 2명이 추가로 원내 대기 상태여서 여력이 없었다”며 “대기 환자 2명을 입원시키려고 상대적으로 증상이 가벼운 2명을 일반 병상으로 옮기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또 “당시 외상외과 전문의 3명이 당직 근무를 하고 있어서 인력 공백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3월 대구에서도 4층 높이 건물에서 떨어져 발목과 머리를 다친 17세 환자가 병원 응급실을 찾아다니다가 구급차 안에서 숨지는 일이 있었다. 이 사고로 대구지역 대형병원 4곳이 보건 당국으로부터 보조금 지급 중단 등 행정처분을 받았다.

이날 A씨의 구조·이송 상황을 보면 ‘응급의료체계’가 작동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A씨는 오전 1시 20분쯤 사고 현장에서 약 20㎞ 떨어진 용인시 기흥구의 2차 병원인 신갈 강남병원에 도착했다. A씨를 수용할 3차 병원을 찾으며 이동하던 중 응급처치를 위해 경유한 것이었다. 병원 측은 “구급차에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송 도중에 우리 병원 의사들이 처치를 지원한 것”이라며 “당시 의료진도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할 위중한 상황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A씨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을 찾아다닐 때 소방재난본부 상황실도 긴박하게 돌아갔다. 상황실에 근무하는 구급상황관리사는 경기·인천·충남 지역 병원 8곳(성빈센트병원, 분당차병원, 분당제생병원, 한림대동탄성심병원, 가천대길병원, 천안단국대병원, 고려대안산병원, 한림대평촌성심병원)에 연락했지만 모두 수용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고 발생 약 1시간 20분이 지난 새벽 1시 45분쯤에야 경기 북부 권역외상센터가 있는 의정부성모병원에서 A씨를 수용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의료진은 A씨의 위중한 상태를 고려해 헬기 이송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시거리와 구름의 고도 등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헬기 운항은 불가능했고, 상황실은 오전 2시 1분 구급차를 이용해 육로 이송을 하기로 결정했다.

A씨는 처음 탑승했던 양지안전센터 구급차에 실려 의정부로 이동하던 중 2시 30분쯤 심정지를 일으켰다. 구급대원들이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며 이송했지만 2시 46분 의정부성모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119 신고가 접수된 지 2시간 18분이 지난 뒤였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대형 병원에서의 수술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인근 병원의 중환자 병상이 모두 꽉 찬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헬기 이송도 어려웠다”고 했다. 경기도와 소방재난본부 등은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이날 오후 실태 파악과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소방재난본부 매뉴얼에는 구급 환자의 경우 경증·중증 여부를 파악해 가까운 병원부터 연락하고, 심한 외상이 있는 경우는 권역외상센터나 대학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에 연락하더라도 중환자 수용 능력이 되지 않아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한 구급대원은 “심정지 환자의 경우는 병원 측의 사전 동의 없이도 응급실로 밀고 들어가고 있지만 이런 경우도 응급수술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최석재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홍보이사는 “골든 타임을 놓친 건 각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현재 응급환자, 중환자를 치료하면 병원이 손해를 보는 구조이기 때문에 늘 인프라와 인력이 부족한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를 바꾸지 않고서 위급한 환자를 못 받았으니 병원 잘못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