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 GPT의 등장 이후, 누군가 저에게 ‘AI(인공지능)가 통번역사를 대체하지 않겠느냐’고 묻더군요. AI로 인해 통번역 서비스 시장에서 달라지는 게 있다면, 실력 없는 통번역사들이 설 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윤해수(71)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이하 서울외대) 총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AI와 같은 IT의 발전이 통번역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은 “AI가 인간의 감성과 미묘한 뉘앙스까지 잡기는 어렵다”며 “실력 있는 상위 10% 통번역사는 더욱 주목받을 것이고, 우리는 그 10%를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외대는 올해 개교 20주년을 맞았다. 학부 과정 없이 학생 약 300명이 3개 학과(한영통번역학과·한중통번역학과·한일통번역학과)에 재학 중이다.

윤 총장은 “이미 간단한 통번역은 AI가 맡고 있는 것이 많다”며 “진심으로 칭찬받는 통번역은 해당 분야에 대한 감각과 배경지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IT’에 대한 이해다. “최근엔 블록체인 관련 기업 회의가 굉장히 많아졌는데,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모른다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죠.”

학생들이 접하기 어려운 전문 분야를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교양과목으로 블록체인 강의를 듣게 하고 있다. 올해엔 ‘데이터 사이언스 학과’를 신설해 내년부터 신입생을 받는다. 이 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영어·중국어·일본어 중 1개 언어에 대한 통번역 수업을 기본으로 듣고, 이 외에 통번역 데이터 분석을 위한 알고리즘 및 통계학, 수학을 배운다.

입학 이후 이어지는 ‘혹독한’ 학사 관리도 한층 강화했다. 매년 3~4대1 입학 경쟁률을 기록하는 이 학교는 사실 졸업이 더 어렵다. 작년 한영통번역학과의 졸업시험(초시) 합격률은 6.4%에 불과하다. 윤 총장은 “교수 3명이 구술시험을 진행하는데, 평균 80점 미만이면 졸업을 시키지 않는다”며 “그 미만은 필드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외대는 ‘구어체 통번역’에 특화된 통번역 AI를 개발 중이다. 교내 부속기관인 통번역센터의 구어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재학생∙졸업생들의 통번역 데이터를 이용해 완성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현재 가장 앞서가는 번역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 독일의 ‘DeepL’은 정치∙경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범용으로 사용되지만, 저희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 특화된 엔진을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 앞서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