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때 돋보기 안경 잊지 마시고요. 만약 깜빡해서 글자가 잘 안 보인다면 아이들에게 ‘여러분, 그림을 잘 봐주세요’ 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아현초등학교 시청각실에 폭소가 터졌다. 이날 벌어진 행사는 ‘입학식에서 책 읽어주는 교장 선생님’ 강연. 서울·경기 지역 초등학교 교장 61명이 모였다. 현장에는 못 왔지만 이날 강연 내용과 추천 책 목록을 이메일로 받고 싶다고 요청한 교장도 200여 명에 달했다. 초등학교 입학식(3월 2일) 열흘 전인 시점이었다.

17년째 ‘학교에서 책 읽어주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심영면 아현초 교장이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아현초 시청각실에서 수도권 초등학교 교장 60여 명을 대상으로 독서 교육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심 교장은 초등학생 때부터 독서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재량 수업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교사·학부모가 학생들에게 소리 내 책을 읽어주는 독서 활동을 계속해왔다. /이태경 기자

강연자는 심영면 아현초 교장. 그는 17년째 ‘학교에서 책 읽어주기’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날 다른 교장들에게 노하우를 전파하기 위해 자리를 만들었다. 심 교장은 서울 미동초 교감이던 2006년부터, 재량 수업이나 1교시 전 시간을 활용해 교사와 학부모, 고학년이 저학년 학생에게 소리 내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교장 부임 이후로는 직접 입학식이나 방학식, 또 1교시 전 학급을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심 교장은 강연에서 “초등 저학년 때 독서 습관이 평생 독서를 좌우한다”며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읽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 교장이 부임했던 서울 소의초는 2010년 학생 한 명당 연간 도서실 대출 책 수가 22권이었는데, 이런 방법으로 4년간 ‘책 읽어주기’를 했더니 2014년 말 98권이 돼 4.5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올해 책 읽어주기 강연에 교장 선생님들 관심이 특히 모인 것은, 코로나 이후 학생들 문해력과 기초 학력 저하가 심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서울 초등 교장은 지난해 2학기 교문 앞에서 통학 지도를 하다가 어휘력 부족 문제를 실감했다고 한다. 학생 여럿이 나란히 걸어오는데 한 명이 차도로 내려가 걷고 있길래 “가장자리 친구, 인도로 올라오세요”라고 두 번을 소리쳤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학생에게 “선생님 목소리가 안 들렸느냐”고 물어봤더니 “저한테 말하신 줄 몰랐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교장은 “그 학생이 ‘가장자리’라는 말을 몰랐던 건지 ‘인도’를 몰랐던 건지 한참 고민했다”며 “수업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다른 교장도 “코로나 학습 결손이 심각해 담임 선생님들이 ‘3학년이 아니라 2.5학년, 4학년이 아니라 3.5학년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앞으로 학교는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수업이 더 늘어날 텐데, 독서가 그에 반비례해 줄어들지 않도록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1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 연간 종합 독서량(종이책과 전자책을 모두 합친 것)은 평균 34.4권으로 직전 조사였던 2019년(41.0권)에 비해 6.6권 줄었다. 특히,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초등학생 독서량이 86.9권에서 66.6권으로 뚝 떨어졌다.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로는 ‘게임·스마트폰·인터넷·텔레비전을 이용해서’(23.7%)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독서량이 준 건 코로나와 스마트폰 확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학교에서 실시하던 ‘아침 독서’가 위축된 영향도 있다. 2014년 하반기 ‘학생들의 수면권을 돌려주자’며 경기도교육청에서 시작된 ‘9시 등교제’가 확산하면서 학교의 수업 전 활동이 크게 줄었다.

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아침 독서를 하는 초중고는 2013년 전국 69.6%에서 매년 줄어 2021년에는 30.3%로 떨어졌다. 안성원 서울 행당초 교장은 “수년 전 담임을 할 때까지만 해도 아침 독서가 있었고, 아침 독서로 뇌를 깨우고 나면 학생들 수업 집중도가 좋았던 게 생각나 이번 강연을 들으러 왔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교장들은 학교 현장의 디지털 전환이 빨라질수록 독서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수영 평택 모산초 교장은 “챗GPT 같은 첨단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질문하고 사고할 줄 아는 학생으로 키우려면 독서 습관부터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