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공주대 미래자동차공학과(천안캠퍼스)는 5억원을 들여 자동차 모터 성능을 검증할 수 있는 첨단 실험 장비 ‘다이나모미터(Dynamometer)’를 사들였다. 그런데 1년 동안 가동하지 못하고 과 연구실 한구석에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전력 공급. 미래자동차학과 연구실이 있는 건물이 지은 지 35년 넘은 곳이라 이 장비를 가동할 만한 대용량 전력을 공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낙심한 학과 교수들은 공주대 원성수 총장과 함께 몇 달 동안 교육부·기획재정부 등을 설득해 전력 시설 보강 공사를 위한 20억원 추가 예산을 받아냈고, 그 후에야 이 실험 장비를 활용해 수업을 할 수 있게 됐다. 공주대는 공주사범대학·예산농업전문대학·공주문화대학·천안공업대학 등 4개 대학을 통합한 종합 국립대. 그런데도 규모에 비해 시설 예산이나 연구비 지원이 부족하다. 공주대 관계자는 “학교 예산으로 새로운 기자재를 구입하는 건 언감생심이고, 뛰어난 연구 실력을 인정받은 교수들이 외부 지원을 따내 고급 장비를 들여와도 (미래자동차공학과처럼) 시설 노후화 때문에 연구 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예산이 부족해 고장 나고 낡은 시설을 제때 못 고치고, 교육·연구 투자가 부실한 건 공주대만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다. 일부 수도권 명문대를 제외한 전국 400여 개 대학 모두 동병상련이다. 14년째 등록금 동결과 학령 인구 감소로 대학 수입은 줄었는데, 정부 재정 지원은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2022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작년 시설 안전 점검에서 전국 대학 건물 8832개 중 5932개(67.2%)는 보수가 필요한 상태인 ‘B등급 이하’를 받았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건물도 1169곳(13.2%)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의 교육 예산 대비 ‘실질 고등(대학)교육 예산 비율’은 2011년 10.8%에서 2020년 9.6%로 감소했다.

대학들 간 1인당 교육비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경북대·전남대·충남대 등 지방거점 국립대 학생 1인당 교육비는 평균 2030만원. 서울대(5286만원)의 38.4% 남짓이다. 학생 1인당 교육비는 학교가 학생 교육을 위해 투자한 비용으로, 인건비·운영비·실험 실습비·기계 기구 매입비 등을 포함한다. 과기부 특별법으로 운영되는 과학기술원(한국과학기술원·대구경북과학기술원·광주과학기술원·울산과학기술원)은 작년 한 해 동안 학생 1인당 평균 8400만원 교육비를 투자했다. 지방거점 국립대 4배 수준이다. 한정된 정부 대학 예산이 차등 지원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충청 지역 한 대학 총장은 “얼마 안 되는 정부 예산을 차등 지원하려다 보니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좋은 서울대나 과학기술원에 지원금이 몰리고, 이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갈수록 심해진다”고 말했다. 전북대 시설관리 담당자는 “’지방거점대니까 다른 지방대보단 사정이 나을 것’이란 얘기를 많이 듣지만, 실상은 리모델링을 통한 환경 개선은커녕 누수나 냉난방기·엘리베이터 등 시설 파손에 대한 보수만 겨우 해결하고 있다”며 “건물 하나를 리모델링하려면 최소 100억원이 드는데, 지금 예산으로는 1년에 건물 하나도 손대지 못한다”고 말했다.

초·중·고교 예산은 남아돌아 어떤 시설을 고칠지 아이디어까지 받고 있는 것과 매우 대조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초·중·고교에 투입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장벽을 허물어 대학 교육에 투자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교육부는 내년에 교육 교부금 중 3조원을 떼어내는 등 11조2000억원 규모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를 만들기로 한 바 있지만 전국 교육감 등 초·중·고 교육 관계자들이 반대하고 있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노동 집약적 산업이 경제를 이끌던 과거와는 달리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은 초·중등 교육보다 대학 교육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할 시점”이라며 “국가 채무는 점점 늘어나는데 교육청에만 돈을 쌓아두는 건 결국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에 빚을 져 초·중등 교육에 투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